황혜영 서원대 교수

 

[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400번의 구타Les quatre cents coupts'(1959)는 누벨바그의 거장 프랑수아 트뤼포Francois Truffaut의 첫 장편이자 자전적 영화이다. 앙트완 드와넬은 학교 교육에 흥미를 못 느끼고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늘 말썽만 피우는 문제아로 여겨진다. 불어작문에서 반에서 5등 안에 들면 천 프랑을 주겠다는 엄마의 약속에 앙트완은 침대에 누워 담배를 피며 자기가 좋아하는 발자크를 읽는다.

그가 읽는 <절대의 추구> 끝 부분, "유레카(찾았다!)"에서 그의 눈빛이 환하게 빛난다. 그는 발자크 사진을 벽장에 모셔놓고 천으로 가려둔다. 불어 작문에서 자기가 직접 겪은 심각한 사건을 묘사하라는 문제를 읽는 순간, 그는 번득이는 영감처럼 "유레카(찾았다!)"를 속으로 외치며 <할아버지의 죽음>을 적어간다. 앙트완은 발자크 영정 앞에 촛불을 밝힌다.

다음 시간 앙트완의 기대와 달리 선생님은 앙트완이 발자크 작품을 베꼈다며 0점을 준다. 베끼지 않았다고 앙트완의 항변에 선생님은 앙트완 작문을 직접 읽으며 앙트완을 역겨운 표절자라고 교장실로 쫓아낸다. "갑자기 죽어가던 사람이 두 주먹을 짚고 벌떡 일어서더니, 겁먹은 자식들 모두에게 섬광같이 가닿는 시선을 던졌다. 그의 목덜미를 덮고 있던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주름이 떨렸으며, 그의 얼굴은 불같은 정신으로 생기를 띠었다. 한 숨결이 이 얼굴을 스치며 그것을 숭고하게 만들었다. 그는 분노로 꽉 움켜쥔 주먹을 치켜들고 터질 듯한 목소리로 아르키메데스의 그 유명한 말을 외쳤다. '유레카(찾았다!)'"- 앙트완이 읽은 발자크 문장

"별안간 죽어가던 사람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겁에 질린 자식들에게 무서운 눈길을 던졌다. 그의 두개골을 덮고 있던 머리카락이 일어서고, 눈썹이 치켜떠졌다. 그의 얼굴은 불이 붙은 듯 생기를 띠었고, 그것이 그를 숭고하게 만들었다. 그는 분노로 꽉 움켜쥔 주먹을 치켜들고, 우레 같은 목소리로 아르키메데스의 그 유명한 말을 외쳤다. '유레카(찾았다!)'"-앙트완의 작문

보다시피 앙트완의 작문은 앞의 발자크 문장과 거의 흡사하다. 과연 앙트완은 발자크를 베끼고자 외운 것일까? 작문 이전에 이미 발자크가 앙트완에게 준 영감을 관객은 안다. 앙트완은 발자크의 문장을 베끼고자 외운 것이 아니라 발자크와 그의 작품의 정신이 앙트완을 전적으로 매료하여 자연스럽게 작문에 뿜어져 나온 것이다. <절대의 추구>에서 평생 절대 원소를 추구하다 죽는 순간 섬광 같은 깨달음을 외치던 화학자 발타자르의 정신이 독자인 앙트완의 내면을 살아있는 생명처럼 채워져 완전히 하나로 포개지게 된 것이다.

학교 수업에서 한 번도 흥미를 가져본 적도,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는 앙트완에게 발자크 읽기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서 끝나지 않으며, 백지 같은 앙트완의 지성에 고스란히 흡수되어 아로새겨진 최초의 지적 자양분과 같은 것이다. "제가 옆에 있었는데 베끼지 않던데요."라는 짝지 르네의 증언이 어른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한 어린 앙트완의 발자크를 향한 숭배와 같은 순수한 열정을 변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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