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충청논단] 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나는 라포르짜 오페라 단장을 맡으면서 작년 11월에 공연한 라 트라비아타를 리허설까지 총 5번을 보았다. 라 트라비아타는 사교계의 꽃이었던 비올레타와 순진한 시골청년 알프레도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첫 공연에서는 비올레타의 격정적인 소프라노 음색에 반했고, 둘째 공연에서는 사랑을 고백하는 알프레도의 테너 음색에 반했다. 그가 부르는 축배의 노래는 라 트라비아타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곡인데, 내용은 부어라, 마시자, 사랑의 기쁨도 순간이요, 꽃들도 아름답지만 지는 것도 순간이다. 즐길 수 있을 때 밤 새도록 즐기자 라는 노래다. 경쾌하지만 세상에 대한 허무가 가득하다. 갑자기 7개월 된 아기를 방치하고 술 마시며 놀다가 사망에 이르게 한 어린 엄마가 생각난다.

세 번째 공연에서는 알프레도와 살림을 차린 비올레타를 찾아가 헤어지기를 설득하는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의 감미로운 바리톤 음색에 반했다. 그는 비올레타에게 지금은 행복할 수 있지만, 세월이 지나면 돈도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받지 못한 결혼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면서 빈털터리가 되지 말고 아직 아름다울 때 사교계로 돌아가라고 설득한다. 하지만 비올레타가 거절하자, "나에겐 천사 같은 딸이 있는데"라는 노래로 자신의 딸이 오빠의 방탕으로 혼사가 어려워졌다고 설득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자신의 딸을 위해 천사가 되어 달라고 부탁한다. 이 아름다운 노래가 끝나자 비올레타는 제르몽의 설득을 받아들이면서 딸에게 어느 불행한 여인이 당신을 위해 천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달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이런 상황에 부모가 찾아가면 소리 지르고 머리채를 잡을 텐데, 도저히 설득이 어려울 것 같은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우아하게 상대방을 설득하는 제르몽의 기술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마지막 공연에서는 병든 비올레타가 알프레도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지만, 그는 오지 않고 가난과 질병에 허덕이는 마지막 장면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그런데 죽기 직전에 희한하게도 알프레도가 비올레타를 찾아와 병든 그녀를 껴안으며 다시 행복하게 살자고 약속한다. 비올레타는 살고자 몸부림치지만 결국 쓰러져 죽는다. 죽은 그녀 옆에서 알프레도는 비통함에 잠기면서 막이 서서히 내린다. 모두들 너무 늦게 온 알프레도를 안타깝게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다섯 번이나 보게 된 라 트라비아타의 마지막 공연이 끝나자 드디어 깨달았다. 가난하고 병든 비올레타를 정말 알프레도가 찾아왔을까? 왜 하필 죽기 바로 직전에 왔을까? 그건 결국 죽기 전 버림받은 비올레타의 마지막 환각이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니, 이 오페라의 제목은 죽기 전에라도 사랑을 찾은 여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버림받은 여자'인 라 트라비아타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나, 그녀는 버림받았구나. 죽기 전까지 그것도 모르고 안타깝게 알프레도를 찾은 것이구나. 바보 같은 여자. 그 순간 나는 베르디가 관객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깨닫고 오페라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올해도 라포르짜 오페라단의 공연을 기대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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