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 서원대 교수

[내일을 열며] 이광표 서원대 교수

 

영화 ‘알라딘’을 보는 내내, 마음이 즐거웠다. 어떤 아이는 영화관을 나서며 휴대전화에 대고 “엄마, 알라딘 최고야”를 연발했다. 알라딘과 요술램프, 다 아는 내용일텐데 무엇이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것일까. 이에 대한 분석이나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애니메이션을 실사 영화로 확장한 디즈니의 과감함을 꼽는다. 누군가는 다 알려진 내용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덧대어 호기심을 자극한 것을 성공요인으로 꼽는다. 또다른 누군가는 램프의 요정 지니 역에 배우 윌 스미스를 캐스팅한 점을 꼽기도 한다.

내게는 지니가 매력적이었다. 그 육중한 몸매가 램프에서 빠져나와 골반을 흔들어대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보노라면,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 지니의 표정과 몸짓을 볼 때마다 경주 석굴암의 인왕상(금강역사상)이 떠올랐다. 얼굴과 몸매, 율동적인 포즈는 석굴암의 인왕상을 빼닮았다. 어디 그뿐인가. 경주 괘릉(9세기)을 지켜주는 서역인 무인상도 떠올랐다.

이 무덤의 봉분 앞에는 무인상 돌조각이 한 쌍 서있다. 그런데 그 얼굴은 우리나라 사람(신라인)의 얼굴이 아니라 서역인 얼굴이다. 신라왕의 무덤을 신라인이 아니라 외국에서 온 서역인이 지키고 있다니…. 무덤 앞 무인상을 서역인으로 표현했다면 무덤의 주인공은 살아 있을 때 서역인과 특별한 관계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의 무덤 앞에 서역인 조각상을 세울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신라 왕이 살아 있을 때, 그 왕을 경호하는 호위무사는 분명 서역인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국립경주박물관 야외엔 어느 무덤의 돌기둥(9세기)이 전시되어 있다. 여기엔 방망이를 어깨에 걸친 무사 한 명이 조각되어 있다. 방망이를 들고 있다면 무덤 침입자를 막아달라는 마음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방망이를 잘 들여다보니 방망이의 끝이 폴로(격구) 혹은 하키 스틱처럼 휘어져 있다. 무덤의 주인공은 생전에 격구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의 무덤에 이런 모습을 조각해 넣을 리가 없다.

영화를 보면서 1000년 전 경주의 일상 풍경을 상상해보았다. 서역 페르시아인이 신라 왕의 행렬 맨앞에서 호위무사를 맡고, 한쪽에서는 신라인들이 페르시아인과 어울려 신나게 격구를 한다. 참으로 흥미로운 모습이다. 1000년 전 경주는 무척이나 개방적이고 모험적인 도시였다. 어쩌면, 경주 땅에도 알라딘 같은 사람이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디즈니는 다 알려진 내용에 흥미로운 상상력을 약방의 감초처럼 가미하고 디테일을 살려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러면서 지니의 배역에 의외의 인물을 캐스팅했다. 새로운 시도,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흥미진진한 1000년 전 스토리가 있다. 그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다. 영화를 보면서 1000년 전 경주가 떠오른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한편으론 알라딘 영화의 상상력과 모험심이 부러웠다.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너의 모험은 지금부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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