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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되다김영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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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6  15: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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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영애 수필가

봄이라고는 하지만 여름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일교차가 심해서 감기를 달고 살았다. 마음의 온도까지 일교차가 심해서 감기는 수시로 몸살이 되었다. 봄에는 밖에 온도 보다 실내 온도가 낮아서 썰렁하다. 녹음방초하고 꽃이 피고 지는데 안에서는 몸도 마음도 추웠다. 남들이 행복할 때 내가 더 불행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안팎의 온도차는 컸다. 날씨도 내 마음도 심한 일교차를 겪으면서 봄에서 여름을 지나고 있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흘러간 유행가와 트로트 시디 몇 장을 구입했었다. 여든이 넘으신 엄마를 모시고 여행을 다닐 때에 들려드리면 엄마의 여행은 기쁨이 배가 되었다. 흥얼흥얼 따라도 부르시면서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표정으로 즐거워 하셨다. 그 옛날 풍류를 좋아하시던 아버지께서는 시골집 안방에 커다란 별표 전축을 들여 놓으셨다.

유년기였던 나는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그 시절 유행가를 들으면서컸다. 약주를 한잔 거나하게 드신 날이면 아버지는 별표 전축에 당신이 좋아하는 노래 레코드판을 올려놓고 들으면서 잠이 드셨다. 물에 젖는 하얀 목화솜처럼 순수했던 그때 나의 감수성은 구구절절한 유행가에 흠뻑 젖어서 지냈었다.

순전히 엄마와의 여행을 위해서만 구입했던 흘러간 유행가 시디는 이제는 엄마의 전유물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며 즐겨듣고 다니는 음악이 되었다. 엄마와 여행을 다니면서 귀에 익숙해서일까! 나도 모르게 운전을 할 때면 습관처럼 즐겨 듣고 있었다. 쿵짝쿵짝 신나는 유행가 가락의 박자와 리듬이 지쳐있는 심신에 위로가 되기도 했다.

유년기에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을 들을 때는 그 무렵의 기억들이 흑백사진처럼 펼쳐지며 스쳐지나갔다. 그 당시에는 귀로만 들리고 입으로만 흥얼거리던 유행가 가사들이 이제는 가슴으로 마음으로 전달되어왔다. 유행가는 인생의 희로애락, 사랑하고 미워하고 때로는 그리워도 하며 기쁘기도 슬프기도 한 인생사를 노래한다. 모두가 다 내 얘기를 노래 한 것 같은 흘러간 유행가가 좋아진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보다.

때마침 TV에서 트로트 열풍이 불고 있었다. 예능 프로에서 트로트 경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K팝의 바람 속에 존재마저도 희미하던 우리의 전통 트로트가 다시 재조명 되고 있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회를 거듭할수록 높아지는 시청률과 함께 사람들은 다시 우리의 전통 가요인 트로트의 사랑에 빠지고 있었다. 내심은 우열을 가리는 치열한 경연이었지만 누가 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그들 스스로는 함께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누군가가 먼저 무대를 떠나게 되어 이별을 할 때는 뜨거운 눈물로 아쉬운 포옹을 했다. 사랑과 우정과 서로에 대한 격려가 아름다워 보였다. 음지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제대로 된 무대에 서보지도 못한 무명 가수들이었다. 그녀들의 열정과 실력은 어렵고 힘든 이시대의 한과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내는듯했다. 우리 모두는 충분히 공감을 하며 박수를 보냈다. 무명의 한을 토해내고 인기와 몸값이 올라가는 그녀들의 모습을 함께 기뻐하며 즐겼다. 그녀들의 노래는 나에게도 그랬듯이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리라 믿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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