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빨갛게 익었다. 초록의 잎사귀 사이사이에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일터 작업대 앞에 누군가 가지 채 꺾어다 놓은 탐스런 앵두는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어떤 이는 손이 먼저 나가 몇 알 따 먹는다. 다른 이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작품사진이라도 찍는 것처럼 진지하다. 머뭇거리던 이는 흥정을 한다. 돈으로는 살수 없으니 맛이나 보라 한다.

바깥마당가에 몇 그루의 과일 나무가 있었다. 겨우내 얼어있던 얼음이 녹아 땅 밑으로 물이 흐르면 앞 다투어 줄기에 눈을 틔운다. 살구, 자두, 앵두꽃들이 하얗게 피워지고 연분홍으로 볼이 발그레하며 고운 자태를 자랑한다.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아이들은 어서 열매 맺기를 기다리게 된다. 그중에  키가 작아 만만한 앵두나무의 꽃 진자리에 연두색의 작은 알갱이가 맺힌다. 며칠 눈길을 주면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었는가 싶은데 다시 보면 하얗게 새끼손톱만 해진다. 학교 다녀오면 가방도 맨 채 설은 놈 하나 따먹고 시어서 눈을 질끈 감아 버린다.

밤새 비라도 뿌린 다음 날은 물방울이 맺혀 보석이 따로 없다. 그렇게 봄비를 몇 차례 맞고 나면 신맛이 단맛과 어우러져 새콤해진다. 빨갛게 익어 농염을 자랑해도 달콤함보다는 새콤하여 우리 식구 입맛에는 안성맞춤이다. 한바가지 따다 툇마루에 옹기종기 앉아 먹는다. 동생보다 더 많이 먹으려고 입안에 한가득 넣어서 오물거리다 씨만 뱉어낸다. 따로 챙겨드린 할머니 그릇에는 소복이 눈이 쌓인 것처럼 설탕이 뿌려져 숟가락으로 떠드신다.

'앵두나무 처녀'라는 노래가 있다. 바람난 동네 처녀가 물동이와 호밋자루 내 던지고 서울로 떠나지만 객지 생활은 만만하지 않아 고생하게 되는데 평소 흠모하던 동네 총각이 찾아가서 함께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앵두가 열릴 즈음 보릿고개로 고생하던 시절에 가족들을 위해 희생했던 누이들의 삶을 노래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면 앵두나무 꽃의 꽃말은 수줍음, 오직 한사람 이라고 한다. 하얗게 핀 꽃은 순수한 처녀의 얼굴을 닮았고 빨갛게 익은 앵두는 오직 한 사람만을 사랑할 것 같은 열정을 느끼게 한다.

앵두나무는 남의 집 울안에 자리를 잡고 사는 것을 낫으로 어슷하게 베어다가 우리 집 앞마당에 꽂아놓으면 시집온 며느리나무가 된다. 낯선 환경에서도 주어진 대로 뿌리 내리고 꽃피우며 열매 맺고 살아 내는 것이 대견하다. 각자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서 자라 성인이 되면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우리들의 삶과 견줄만하다. 그들이나 우리들의 삶은 평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고단하고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야 할 때도 있다. 새벽닭이 울도록 잠을 못 이루는 날들이 지나고 나면 평안을 얻는 날이 온다. 미세하게 색깔이 변하여 가고 농익었다 여길 때도 오묘한 맛의 신비가 인생의 맛을 말해주는 듯 하다.

앵두나무 가지가 시들해졌다. 열매는 몇 알 남지 않았다. 두어 알 따서 입에 넣는다. 이 앞을 서성이며 앵두나무에게 눈길을 주었던 모든 이들이 추억 한 갈피를 만들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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