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신건식 (申健植·1889년 2월 13일~1963년 12월 8일)

▲ 신건식 부부와 신순호.

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출생
YMCA 외국어학교 졸업 후
형인 신규식 따라 상해로 망명
중국군 장교로 독립운동 후원
1937년부터 임시정부에 참여
충청도 대표의원 선임 입법활동
부인 오건해·딸 신순호·사위에
조카·사돈까지 "독립 만세"

[충청일보 배명식기자] 신건식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 재무부원, 재무부차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다. 부인은 물론 딸, 사위, 형, 조카, 사돈이 모두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독립운동가 명문가다. 

신건식은 충청도 문의군 동면 인차리(현 충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인차2길 4-24)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조선 중기 청주로 낙향해 문중촌을 형성했는데 지리적으로는 남당산의 동쪽에 위치하고 잇다고 하여 일명 산동(山東)신씨라고도 일컬었다. 남인계열로 고종 즉위 후 흥선대군의 과감한 인재등용에 의해 중앙에 진출할 수 있었는데 이를 기회로 상경한 문중인사들은 개화에 빨리 눈을 뜨게 됐다. 

신건식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YMCA에서 운영하는 외국어학교를 졸업하고 근대적인 사고를 갖춘 개화인사로 성장했다. 
1911년 형인 신규식을 따라 상해로 망명, 1912년 4월 중국 절강성 성립 항주 의약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신규식, 신채호, 박찬익 등과 함께 생활부조, 국사협력을 논의키 위해 만든 동제사(同濟社)와 대동보국단(大同輔國團)에 가입했다. 

동제사는 민족운동을 위해 1912년 결성된 단체다. 동제사는 전성기 회원이 3백여 명에 이를 만큼 상하이 지역 독립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동주공제'(同舟共濟) 즉, 한 마음으로 같은 배를 타고 피안(彼岸)에 도달하자는 뜻이다. 표면적으로는 우리 동포들의 상부상조를 위한 조직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국권회복이 진정한 목표였다. 
동제사는 상하이에 본부를 두고 중국내 각 지역과 구미, 일본 등지에 지사를 설치해 동포 청년들의 교육활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또 상하이 프랑스 조계 내에 박달학원을 설립했는데 신건식은 여기에 참여해 청년 교육에 앞장섰다. 

1915년 결정된 대동보국단은 완전평등의 이상 세계를 이룩하려는 동양의 전통적 사상인 대동사상과 박은식이 창건한 대동교가 기본이념이 돼 결성된 단체로 알려져 있다. 신건식이 대동보국단에서 활동한 것은 대종교를 신봉한 것과도 연관이 있는데 당시 대종교 관련 행사는 민족정신 보전, 항일운동과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1923년 4월 신건식은 중국군 중교(中校·중령에 해당)로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후일 황포군관학교로 개칭) 외과주임이 됐다. 이 때 그는 난징에 거주하던 독립운동가와 청년 학생 등 한인 동포들의 숙식 경비를 지원했다. 중국군 장교로서 비교적 넉넉한 급료를 받아 우리 독립운동을 후원한 것이었다. 그러나 1933년 과로와 교통사고 등으로 심신이 고단해지자 중국군 계급과 직책을 사임하고 입원 치료를 받았다.

1937년경부터 그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했다. 그는 난징시 교외에 있는 남기가(藍旗街) 1호에서 조소앙, 지청천, 홍진, 이광 등과 함께 생활하며 독립운동을 모색했다. 당시 그는 엄항섭과 함께 광복진선 선전부에 소속되어 선전활동에 주력했다. 그러던 중 난징이 일제에 함락당할 위기에 처하자 11월 다른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가족을 데리고 난징을 탈출해 창사로 이동했다. 
1939년 중경(重慶)으로 이전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31회 회의에서 충청도 대표의원으로 선임돼 1945년 광복 때까지 입법활동을 통해 해외에서의 독립운동을 제도적으로 지원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1941년에는 임시정부 재무부원으로 재정문제를 해결하는데 진력했고 1943년 3월 4일에는 임시정부 재무부차장으로 임명됐다. 
1944년 3월에는 한국독립당을 조직하여 감찰위원에 선임됐으며 1945년까지 임시정부의 재정문제의 확충과 운영의 묘를 살려 왔다.

신건식의 부인 오건해(吳健海)는 임시정부의 안살림과 독립운동가들의 수발을 드는 데 정성을 다했다. 오건해는 김구 선생이 창사에서 총격을 당해 사경을 헤매다 겨우 살아나 퇴원 후 용양할 때 식사 등의 봉양을 맡았다. 1940년 6월 17일 충칭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이 창립되자 이에 참가했고 1942년부터 한국독립당원으로 참가해 활동했다. 

신건식·오건해 부부의 딸 신순호와 사위 박영준, 형 신규식과 조카 신형호(큰형 정식의 아들), 사돈 박찬익이 모두 독립운동가다. 신규식의 사위는 민필호이고 민필호의 사위는 김준엽으로 옹서(翁壻, 장인과 사위)가 독립운동가로 연계되는 대표적 사례다.
정부는 이들 부부의 독립운동 공적을 기리기 위해 신건식은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오건해는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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