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욱 충북도립대 교수

 

[충청칼럼] 조동욱 충북도립대 교수

 

오늘 칼럼 글을 작성하면서 스스로 한참을 놀랐다. 제목을 사자성어로 달고 있는 나를 보고 놀랐다. 난 기본적으로 글을 어렵게 쓰질 않는다. 아니 어려운 글을 쓸 정도로 아는 것도 없다. 또한 말을 길게 하지 않고 설명을 못 알아듣게 하질 않는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이해 안 되는 것을 나에게 물어보면 아빠는 이렇게 쉽게 설명을 하는데 왜 학교에선 어렵게 설명해서 못 알아듣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오늘 내가 서두에 이런 말을 꺼내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이유이다. 아파트 그만 져라.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예를 들어 구룡산에 4,000가구의 아파트를 짓겠다는 것인데 이러면 안 된다고 시민들이 짧게 그리고 알아듣기 쉽게 말을 하는데도 물구하고 한시장님께서 이 말을 못 알아듣는 것에 기가 막힌다. 오죽하면 내가 직접 마이크 들고 촛불문화제에 나가서 노래를 부르고 있겠는가?

오늘 이 자리에선 지식생태학자 유영만씨의 글을 소개해 주고 싶다. 제목이 ‘이런 사람 만나지마라’이다. 첫째, 상대가 이야기할 때 귀 막고 듣는 사람,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삶이 기울어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이것조차 모르는 사람은 만나지마라. 둘째, 필요할 때 나타나서 필요한 걸 요구하는 사람, 필요할 때 필요한 걸 부탁하면 필요한 걸 얻을 수 없다는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만나지 마라는 것이다. 일예로 선거 때와 당선 후 확 바뀌는 사람도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 내 이익만 챙기는 나뿐인 놈, ‘나뿐 놈’은 ‘나뿐인’놈이다. 넷째, 자기 과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 자기 ‘과시’에 몰두하면 ‘무시’당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하곤 만나면 안 된다.

다섯째, 무슨 이야기를 할 때마다 말문을 막는 사람. ‘말문’을 막는 사람은 어떤 ‘질문’도 들리지 않는다. 여섯째, 과거이야기에 빠져 미래가 보이지 않는 사람. 곤대는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고 리더는 미래로 향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만나지 마라. 일곱 번째, 타성에 젖어 사는 사람, 즉, ‘타성’에 ‘한탄’하면 ‘탄성’을 잃고 ‘감탄’할 일도 없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하곤 만나지 마라. 여덟 번째, 책을 읽지 않아서 책임(責任)질 줄 모르는 사람, 즉, 책을 읽지 않으면 책(責)잡힌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만나지 마라. 아홉 번째, 상대의 단점만 지적하는 사람, ‘단점’만 지적하는 사람은 ‘장점’을 볼 시간이 없다. 열 번째, 대접만 받고 은혜를 저버리는 사람. 은혜를 저버리면 다른 사람에게도 버림받는다. 접대는 주지도 받지도 말고 대접을 주고받자. 대접이 오고가는 인간적인 정이 사람과 사람을 끈끈한 사랑으로 맺어준다.

釣而不網(조이불망), ‘낚시 할 조, 어조사 이, 아닐 불, 그물 망’으로 이루어진 사자성어이다. 그 뜻은 낚시질은 해도 그물질은 하지 않는다는 말로 자신에게 필요한 양만 취할 뿐 더 이상의 옥심을 부리지 않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아무리 지자체장이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다 해도 자신에게 필요한 양의 권한만을 취했으면 한다. 이게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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