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천 입시학원장

 

[목요사색] 정우천 입시학원장

분위기가 전혀 다른 두 편의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개봉 전부터 화제였던 ‘기생충’은 기대대로 호평 속에 상영되고 있고, 개봉 초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던 ‘알라딘’은 점점 입소문을 타며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주된 요소는 종교나 문화, 국가가 아니라 소득’이라는 Hans Rosling의 지적처럼, 시대와 지리적 배경은 다르지만 계급 간의 차이에 의한 결핍과 좌절을 포함한 삶의 양태는 묘하게 비슷하다. 뻔하고 흔한 것보다는 색다르고 자극적인 것이 흥행의 성공방정식이란 공식을 따른 것은 같지만, 빈부와 계급 간의 차이에 대한 세상의 보편성을 다른 시각으로 접근한 두 영화의 방식은 매우 흥미롭다.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는 두 방법이 있다. 하나는 알고 있지만 애써 외면하던 사실을 눈앞에 들이밀어 충격을 주는 방식이고, 다른 방식은 현실에서는 거의 가능하지 않은 희망 사항을 대신 이뤄 위안을 주는 방식이다. 기생충은 디테일에 충실하다는 봉준호 감독의 특성대로 삶의 구석구석을 치밀하게 파고들어 세상의 진실을 해부한 영화다. 반복되는 계단이나 선으로 은유 되는 신분의 차이나, 냄새로 언급되는 넘지 못할 계급의 구별은 감독이 세상을 확인하고 재단하는 도구 중 하나이다.

반면 알라딘은 현실에서는 흔치 않지만, 대다수 보통사람의 바람대로 권선징악의 뻔한 성공담을 밝게 표현한 영화다. 기생충에 강자는 악하고 약자는 선하다는 약자의 희망 사항에 대한 야유가 있다면, 알라딘에는 현실에서는 드문 약자의 희망을 대신 이뤄주는 신데렐라 이야기가 있다. 팩트폭격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자각시켜 관람객에게 씁쓸함을 주는 영화가 기생충이라면, 약의 쓴맛을 잊게 하기 위해 먹던 사탕처럼 달콤한 환상을 갖게 해 주는 영화가 알라딘이다.

인간사를 현미경으로 보면 비극이고 망원경으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있다. 제대로 보려면 현미경으로 봐야 할 때도 있고 망원경으로 봐야 할 때도 있다. 단순하고 명료한 지식과 방법에 모든 사람이 열광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도 명료하지도 않다. 사실 단순한 방법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거의 없다. 선이 지켜지고 질서가 유지되면 세상은 반듯하지만 그렇게 선을 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 게 또한 세상이다.

숙주의 영양을 빼앗고 훔쳐내야 기생충은 살 수 있지만, 숙주를 죽이는 기생충은 실패작이다. 숙주를 죽이면 그 안에 있던 기생충 역시 사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확신으로 자행되는 행위는 통쾌하지만 위험하다. 진실을 밝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시한부 환자에게 전해주는 진실처럼 가혹한 진실도 있다.

그런데도 두 영화가 전하는 공통점은 있다. 어쨌든 세상에 차이는 존재하며, 그 차이는 요술램프의 지니처럼 무엇인가의 도움 없이는 극복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도움은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며, 세상을 분석하고 극복하고 해결할 명료한 만물 이론은 아직 없다는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