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 충청북도교육삼락회장

[오병익칼럼] 오병익 충청북도교육삼락회장

조롱박 덩굴이 줄타기 한다. / 여름내 기어오른 것도 모자라 / 아래 한번 안 본다. /󰡐어쩌려나󰡑/ 고개도 날마다 따라 올라 / 더 젖히기 힘들 때 / 옹기종기 매달려 내려오기 연습이다. / 그래, 조롱박으로 이름 붙였지./ 필자의 동시 ‘조롱박’ 전부다.

6·25 피난 터에서 걸음마를 시작했던 필자 나이 70을 보태는 동안 주권국가로서 안위를 위한 희생과 평화기류 등 긴장·흥분·냉담·기대의 물결로 가팔랐다. 우리 해군 천안함이 피격돼 두 동강 난 채 참혹했던 백령도 사건일지 10년째다. 수병 46명은 물살 센 바다에서 명찰만을 불린 채 조국수호의 별로 잠들었다. 당시, 함장은 자기 구명조끼를 입혀 부하 구조와 탈출을 도왔고 부사관 역시 매뉴얼보다 더 승조원들을 최후 조치했다. 바다 아래 여러 날 묶인 용사들, ‘혹시나’ 졸였던 생환 특보는 물무늬 떨림 같은 빈 그림자처럼 부서졌다.

한국전쟁 정전 후 처음 남·북 정상은 한 달 간격에 두 번씩이나 군사분계선을 번갈아 넘으며 세상 하나 뿐인 걸작 ‘판문점 평화’를 세기적 뉴스로 엮어냈다. 그러나 합의문 잉크도 마르기 전 중앙정부·지자체 할 것 없이 중구난방(衆口難防)식 대북 희망 샴페인을 터뜨렸다. 아니나 다를까. 휘파람 감개는 잠시, 북한은 신형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여 국제사회 대북제재 유지를 스스로 묶었다. 9·19 군사합의 위반이니 멈춰 선 남북 간 약속도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 발사체 쯤 걱정 할 일 아니라며 안심에 무게를 둔 논리적 비약 역시 찜찜한 처사였다. 엇갈린 해석을 덮고 넘어가기보다 관련정보를 정확하게 규명, 응징엔 왜 인색했을까. 늘어지도록 조롱박을 여럿 매단 덩굴은 바람에 흔들릴망정 가을볕만 고집한다. 우리만 너그러운 자존심이 어디 짝사랑으로 단정될 뉘앙스인가.

최근, 북한 소형목선이 북방한계선을 130여 km 남하하여 삼척항에 정박하기까지 우리 군과 해경은 어처구니 없는 “근무 중 이상 무”만 반복했다. ‘철통 경계’란 립서비스일 뿐 지역 주민 아니었으면 어떤 제2 제3 사태가 벌어졌을지 등골부터 오싹한다. ‘알았다 몰랐다’로 티격태격하는 동안 은폐·조작은 탄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황 설명조차 ‘이랬다 저랬다’ 우스꽝스럽다. 국무총리·국방부장관의 대국민 사과보다 군화부터 졸라매야 순서였다. 비핵화 평화 분위기 편승으로 느슨해진 군 기강(紀綱)마저 미심쩍다. 뭉그적거리고 주저앉아서 되겠는가. 세대·정파·이념 등 쇠락한 진영 논리까지 조국 수호 앞에 하나 되는 돌파구, 썸남 썸북 러브라인에 더 긴장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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