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비발디의 플루트 협주곡이다. 지난 연주회에서 만난 곡이다. 홍방울새가 지저귀며 노니는 모습을 연주자가 잘 표현해주어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다. 자주 듣고 싶은 마음에 휴대전화의 벨소리로 입력해 두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아름다운 멜로디에 가슴이 내려앉는다. 허둥대며 발신자부터 확인하고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안심이 된다. 시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되고 부터이다.

처음 벨소리를 지정하게 된 것은 명성황후의 OST덕분이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신이 내린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나 가거든’의 가사와 호소력 있는 음색이 가슴을 저미었다. 혼신을 다한 연기자들의 연기와 어우러져 작품이 완성된다고 여겼다. 들을수록 빠져드는 마력이 출퇴근 하는 내내 차안을 가득 채웠다. 혼자 듣고 즐기기엔 더 없이 좋았다. 가슴 밑바닥에 깔려있던 아련한 아픔과 나름의 애증들이 솟구쳐 올라와 눈물이 되기도 했다. 그래선지 부르는 가수도, 감상하는 이도 음악 따라 인생이 어두운 그림자에 갇힐 수 있다고 하면서 지인이 밝은 곡으로 바꾸면 어떠하냐고 했다.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다른 음악이 귀에 들어왔다.

국악을 전공하는 아들의 학교 행사나 공연장에서 자주 듣게 된 춘향전의 ‘사랑가’ 이다. 유쾌하고 정감 가는 것은 중모리와 중중모리로 익숙한 장단의 리듬감과 가사가 주는 재미다. 이 도령과 춘향이가 노니는 모습이 고스란히 그려진다. 가사는 짓궂기도 하지만 어느새 사랑의 몸짓을 부끄럽지 않게 바라볼 수 있는 원숙한 중년이 되어서 인가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벨소리에 박장대소를 했다. 국악 전도사라도 된 양 친구들이 내게 전화를 걸어 오면 들을 수 있도록 연결음도 맛깔스런 부분으로 해 두었다.

어찌 된 일인지 구순을 넘기신 친정어머니가 가장 즐거워하셨다. 무심한 딸에게 전할 말이라도 있으면 여덟 번째 단축번호를 꾹 누르신다. 사랑가가 흥에 겨워 따라 부르고 전화를 받으면 당신이 어느 대목까지 들으셨는지 말씀하신다. 어느 봄날 음악회에서 마음을 사로잡은 홍방울새로 벨소리를 바꾸는 중에도 연결음은 그대로 두었다.

겨우 기저귀를 벗어났을 즈음의 조각난 파편 같은 기억에서부터 죽음이란 슬픔으로 각인되었다. 서 너 살 터울의 언니가 학교 다녀 온 후 며칠을 앓다가 생을 달리 했을 때부터다. 삶과 죽음이 한데 어우러진 것임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다는 이치를 알고 있다. 보내 드려야 될 때는 또 그래야 됨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수없이 겪었으면서도 막상 어머니가 우리 곁을 떠나려 하시니 서른 해 가까이 며느리로 살아 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야속하게 느껴졌던 일들조차 사랑이었음을 깨닫는다. 중환자실에서 온 몸이 사그러드는 고통으로 진통제에 의지하면서도 손을 꼭 잡아 주셨는데 행여 어머니께서 다시 일어나셨다는 소식이 오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기만 한 것일까. 홍방울새의 사랑스런 모습이 고스란히 그려지는 벨소리를 타고 순리를 벗어 난 소식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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