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완보 충청대교수

[충청의 창] 심완보 충청대교수

청와대 청원 게시글 중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유대인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어떤 권위적인 시스템이 주어졌을 때 이 시스템의 정당성, 그리고 시스템이 가져올 사회적 영향에 대해 사유하기를 회피하고, 성실하게 그 시스템에 봉사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들이 은연중 저지르는 불의에 대한 무책임한 방관이나 암묵적 동조는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 전범인 나치 장교 아이히만과 다를 바가 없다.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지켜본 아렌트는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인류사에서 가장 끔찍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를 분석하였는데 그녀의 결론은 사유를 하지 않음이 바로 평범한 사람도 이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히만이 유대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의 타고난 악마적 성격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국가의 명령이나 임무를 당연시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해서는 안 되는 일에 가담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관료적인 효율성, 권위에 대한 복종, 성장 또는 물질 만능에 따른 경제적인 효율성, 심지어 국익·반공·애국심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 채 악행에 가담하거나 침묵하고 있을 수 있다.

 한국의 근대사에서도 '친일파 청산'이라는 문제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일본제국이라는 악의 시스템에서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그 시스템에 순응하였고, 더 적극적으로 순응한 사람들은 친일파가 되어 독립군을 잡아들이고 고문까지 하였다. 어쩌면 당시 친일파들도 아이히만처럼 지극히 평범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군사독재정권 시기에도 공안기관과 경찰조직은 많은 민주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잡아서 고문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였다. "고통당하는 사람이 나 자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기꺼이 해야 한다." 한 정치철학자의 말이다. 생각 없는 행동이 유대인 말살의 '아이히만'을 만들기도 하고, 사유와 성찰의 행위가 1000명이 넘는 유대인을 구한 '쉰들러'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만약 인류의 파괴 기술이 점점 더 발달해서 언젠가 인류가 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그 멸종의 원인은 인간의 잔인성 때문이 아니라 일반 대중의 온순함과 책임감의 결여, 그리고 모든 부당한 명령에 대한 비굴한 순종 때문일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 일어날 더욱 끔찍한 사건의 원인은 온창하고 순종적인 사람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결국 '악의 평범성'을 극복하는 길은 타인의 고통이 결국은 나의 고통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는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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