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 전 언론인

 

[김종원의 생각너머] 김종원 전 언론인

'권력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줄 서지 않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기다리지 않는 것이라고도 말하고 싶다. 권력은 줄서지 않고 기다리지 않는 '힘'이다. 정치권력을 포함한 모든 권력이 그런 힘을 갖는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 대통령은 국내에선 모든 행사, 모든 일정을 줄서지 않고,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래서 대통령이 줄을 선다거나 기다리거나 하면 큰 화제 거리, 기사거리가 된다. 오히려 대통령은 많은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고 줄서게 할 수 있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차로 이동할 때는 도로를 프리패스로 만들어 목적지까지 멈추지 않는다.

일례로, 청와대나 정부종합청사에서 성남시 서울공항으로 이동할 경우 신호를 다 받고 차가 밀리는 것까지 생각하면 출근시간에 1시간은 족히 걸리지만, 신호를 파란색으로 바꿔주면 20여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청와대나 총리실 출입 기자를 했던 이들은 모두 이런 경험이 있다. 국회의원들의 경우, 공항 VIP실을 이용하면 비행기 출발 30여분 전에만 공항에 도착하면 된다. 보통사람들이 공항에 2시간에서 3시간 이르게 도착해 수속을 밟는 것에 비하면 거의 기다림이 없는 셈이다. 지금은 다선 국회의원이 된 대전지역 모 국회의원은 초선시절 행사장에 늦게 가면 마음이 초조하고 급해졌지만, 늦게 도착해도 이른바 상석에 앉는 의전이 계속되자 아예 느긋하게 가게 되더라는 고백도 했다.

대통령뿐 만은 아니다. 재벌기업 총수, 대기업 CEO 등 경제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세계를 무대로 뛰고 있는 이들은 전용기, 전용 의전을 통해 줄을 서지 않고, 기다리지 않고 업무를 볼 수 있다. 유명한 가수, 영화배우 등을 만나기 위해 팬들은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들은 굳이 팬들과 소통을 하기 위해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물론 연예인들이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것은 인정해줘야 한다. 다만, 이미자 조용필은 기다림 끝에 볼 수 있는 슈퍼스타라는 사실이고, 그 영향력이 높을수록 무대에서 뒤 늦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관객을 더 객석에 잡아두기 위해 유명한 스타들을 마지막에 등장시키는 일은 행사장에서 비일비재하다.

중국 '전국책'에 실린 당시 권력자 맹산군과 관련된 이야기 한 토막. 맹상군이 권력을 놓쳤다가 다시 잡았을 때다. 맹산군이 자신이 실권했던 기간 동안 떠났던 책사들에 대해 문책 등 벌 줄 생각을 이야기 하자 한 측근은 이렇게 이야기 했다. "사람들은 아침이면 시장으로 모여들고 저녁이면 모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뿔뿔이 흩어집니다. 아침시장을 특히 편애하고 저녁시장을 유달리 미워해서가 아닙니다. 저녁시장에는 필요한 물건이 이미 다 팔리고 없는지라 떠나갈 뿐입니다."

권력자는 아침시장처럼 자신을 기다리고, 줄 서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많은 것을 줘야한다. 그래야만 권력의 의미가 있는 셈이다. 특히 정치적으로 위임된 권력의 경우 더 그렇다. 줄서지 않고, 기다리지 않는 권력이 천년만년 가는 법은 없다. 권력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이를 제대로 사용하고, 그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한다면 권력에서 내려왔을 때도 여전히 박수를 받을 것이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님을 권력자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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