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용 언론인(대전일보 전 대표이사·발행인)

 

[신수용의 쓴소리칼럼]  신수용 언론인(대전일보 전 대표이사·발행인)

지난 2012년 연말 대통령 선거후에 우편물로 책 한권을 선물로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 비서관을 자낸 분이 보낸 책이다. 그가 당시 몇몇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연말 선물로 보낸듯하다. 선물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다가 떨어진 문재인 대통령이 지은 ‘운명’이란 책이었다.

오늘(8일), 윤석열 차기 검찰총장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그의 청문회에 앞서 책을 꺼내보니 의미있는 대목이 있었다. 책 속에는 검찰 내 개혁에 대한 일단이 이 대목에 압축돼있다. 법조인으로, 노무현 참여정부 때 그는 민정수석, 비서실장으로 국정원, 감사원, 검찰, 경찰 등의 권력기관 개혁을 주도했었기에 말이다.

책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의 인터뷰로 끝을 맺는다. 주요 내용은 ‘문재인의 운명’이란 말처럼 그와 노 전 대통령의 만남과, 노 전 대통령을 도와 참여 정부 청와대의 이야기 등이 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책에서 검찰 내 개혁의 필요성을 짚었다. 눈에 띄는 대목은 ‘검찰 기수(期數)’의 그릇된 관행을 지적한 내용이다. 문 대통령은 “검찰의 전통은 후배 기수가 선배 기수를 추월해서 승진하면 선배들은 모두 옷을 벗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는 “(사법연수원) 동기 중 한 사람이 검찰총장이 되면 (선배기수는 물론) 나머지 (같은 사법연수원)동기들은 모두 그만두고 나갔다. 참여정부는 그런 문화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없어져야 할 군사문화라고 판단했다. 검찰개혁 방향과도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옳은 얘기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59·23기)을 차기 검찰총장으로 지명하면서 또다시 그 관행과 맞닥뜨렸다. 그는 문무일 현 총장(58·사법연수원 18기)보다 사법연수원 5기수 아래다.

그래서 최근 법조계 모임에서 윤 검사장이 지명되자 '기수 파괴'여부가 대화의 핵심이라고 한다. 그가 지명되자 동기나 선배기수가 옷을 벗는 검찰지도부가 수십 명에 될 것이란 예상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표를 던진 이는 5명 안팎이다.

여기서 윤 지명자는 남다른 리더십이 돋보였다. 그는 검찰조직 특성상 검찰 총장이 지명되면 동기나 선배기수 수십 명이 사표 던질 거라는 예상에 손수 진화에 나섰다. 동기나 선배 검사장들에게 직접 “나가지 말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같이 일하자”고 손을 내민 것이다. 총장에 지명되고서는 “동기들뿐 아니라 위 기수도 일부는 남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여러차례 전했다고 한다. 그러니 검찰내 분위기가 사뭇 달라질 수밖에 없다.

9수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윤 내정자의 이런 생각은 동기나 선배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또 검찰에 남아있는 선배·동기들보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다는 점도 고위직의 줄 사표가 나오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꼽는 이도 있다.

그는 누구 인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는 고려 때 거란군의 침략을 4군 6진을 설치해 물리친 윤관장군의 파평 윤 씨 후손이다. 충남 논산에서 양반으로 통하는 조선의 문인인 윤증선생의 후손이다. 그는 윤증선생의 직손이다. 여러 대(代)의 걸쳐 내려온 조부와 부친이 논산에서 살았다.

그는 검사시절 ‘충청도 양반고집’이란 소릴 들으며 안팎의 타협 없이 일한 인물이다. 박근혜 정권 때 국정원 댓글사건을 수사하며 엄벌을 고집하다 좌천됐다. 승진에도 여러 차례 누락됐다. 그는 개의치 않았다. 누가 물으면 그는 “범죄와 싸우려고 검사가 됐지,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검사가 된 것 아니다”라고 말했었다. 지난 2013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최순실 국정농단’ 특별 검사 팀의 수사팀장으로 막강한 권력과도 싸웠다. 이를 눈여겨본 문 대통령은 그를 서울 중앙지검장으로 전격 발탁했다. 그가 대전고검 검사신분일 때다. 그 때도 ‘기수파괴’란 이름으로 이의를 제기했지만 그는 일로 답했다. 그는 엉터리 정권인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부도덕과 썩은 권력의 환부를 집중 파헤쳤다. 바로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의혹 수사가 그것이다. 이어 이명박 정권 때의 권력사유화 의혹에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의혹에 메스를 댔다.

그러나 그에게는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그는 검찰총장에 임명될 경우 수두룩한 난제를 풀어야할 숙제가 기다린다. 문 대통령은 그를 선택한 이유는 분명한 메시지와 함께 그 과제들을 풀어내야한다. 그 하나가 적폐청산의 지속성이다. 윤 지명자는 적폐청산을 지휘할 상징적 인물이다. 집권 3년차에 접어든 문 대통령은 적폐청산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지휘봉을 윤 지명자에게 맡겼기에 그는 이에 충실해야한다.

또 하나는 검찰내 개혁이다. 그건 바로 공정이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던 6년 전 밝힌 소신대로 검찰조직을 이끌어야한다. 과거의 검찰처럼 특정정파의 눈치나 보고, 특정세력·인사에 휘둘려서는 곤란하다. 여태껏 정치검찰이니, 짜맞추기씩 수사, 면죄부수사니하며 검찰에게 씌워진 오명을 걷어 내야한다. 그러려면 공정해야한다. 자유한국당이 윤 지명자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벼르는 이유는 그간의 의혹 때문이다.

한국당은 현 정부 출범 2년여간 여권발 의혹만 70여건에 이른다고 한다. 또 이를 고소·고발했다. 그중에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손혜원 땅 투기 의혹과 환경부 블랙리스트 등 4건뿐이다. 나머지는 무혐의나 이유 없이 미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당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임종석 전 비서실장 등에 대해 민간인 사찰·블랙리스트 작성 의혹 등 5가지 혐의로 고발했다. 검찰은 민간인 사찰만 ‘무혐의’로 처리했을 뿐 나머지 4개건 수사는 진전이 없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위장 전입 의혹과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의 전임 정부 기밀문서 1660건 공개 사건도 감감무소식이다. 고발인인 한국당 진술을 1번씩 받은 게 2년간 수사의 전부다. 그래서 한국당은 검찰쇄신을, 검찰 인적쇄신을 외쳐왔다.

 이는 인적쇄신만이 아니다. 검찰이 권력의 눈치 보기라며 불공정으로 규정하고 있다. 공정과 중립을 되찾는다면 검찰은 다시 희망의 싹이 난다. 독자들이 믿을만한 언론사에 제보하듯 검찰도 마찬가지다.

검경수사권조정과 공수처법에 관한 입장도 윤 지명자는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세종은 자치경찰시행으로 경찰이 어수선하고, 공수처신설로 검찰분위기가 어정쩡하다. 하지만 그는 이를 과감히 풀어낼 책무가 주어진다.

그는 청문회를 거쳐 총장에 임명되면 스스로의 개혁에 나서야한다. 평생 몸담은 검찰에 메스를 대는 일부터, 적폐청산까지 온몸으로 받아내며 이뤄야한다. 그러려면 기득권을 내려놓고, 안팎의 반발을 극복할 리더십을 보여야한다. 공정하고, 억울하고 분한 국민이 검찰을 찾아 하소연할 만큼 검찰이 개혁되어야한다. 그게 문재인정부가 추구하는 검찰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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