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백목련] 육정숙 수필가

진하게 우려졌다. 가마솥 안에서 뭉글뭉글 움직이는 보얀 국물에 침이 꿀떡 넘어간다. 소꼬리에 사골까지 넣어 가마솥에서 은근한 불로 오랜 시간 푹 고아냈으니 진국 중에 진국이 되었다. 사골 국이 없으면 식사를 거르시는 시모 덕에 곰국이 떨어지는 날이 없다며 칠팔월 한여름에도 준비를 해 두어야 한다는 지인이 있다.

어쩌다 그 집 앞을 지나가게 되면 습관처럼 들려본다. 뜨끈한 곰국을 내어준다. 누린내 없이 맛이 깔끔하다. 곰국을 좋아 하진 않는데 지인의 곰국은 참 맛있다. 그런데 지인은, 끓이는데 질려서 한모금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 스물다섯 젊은 새댁 시절부터 사십여 년을 끓였다.

처음엔 멋모르고 끓여내고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을 힘들게 하면서 끓여내고 자식들을 키우고 결혼을 시키며 끓여내고 그러면서 나이 들고, 그렇게 세월을 먹은 곰국 인지라 더 맛깔스러웠던가! 잡냄새 없이 구수하고 진하다. 구순하고도 반을 넘긴 지인의 시모는 건강해 보이셨다. 기억력도 좋으셔서 단번에 나를 알아보신다. 며느리와 편한 시간 보내라고 꼿꼿한 허리로 마을회관에 다녀오신단다. 보기에 참 좋아보였다.

진국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거짓이 없이 참됨’이라고 되어있다. 진국은 진실하다는 것과 상통한다. 진실이라는 단어도 사전적 의미는 ‘거짓이 없이 바르고 참되다.’로 되어있다. 그렇다면 진실하다는 것은 결코 거짓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우리의 삶 속에서 현실적으로 진정 거짓이 없는 행동이나 말, 그와 유사한 행동이 전혀 없을 수 있을까?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의 현실에서 참으로 판단하기 애매하고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살다보면 우린 본의 아니게 상황에 따라 거짓행동이나 말을 할 때가 있다. 이를 두고 과연 진실하지 못하다고 해야 하는가! 또는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려서, 그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더러는 주변사람들의 마음의 평온을 깨지 않으려고 그런 행동이나 말을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진정 거짓을 말하거나 행동을 할 때도 있다. 이럴 때 양심을 가지고 거짓을 고백하며 뉘우친다면 그 또한 진실한 것이다. 그러나 뉘우치고 고백하고 돌아서서는 그런 행동을 반복한다면 이는 결코 진실하지 못한 것이다.

거짓의 말과 행동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지, 그 파급효과가 미치는 정도가 문제점이 되겠지만. 결국 거짓은 거짓을 낳고 시간이 흐를수록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우린 더욱 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학창시절 교과서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는 급기야 진실을 말해도 이미 깨진 신뢰는 회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삶의 모든 관계 속에서 불신의 씨앗은 심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겐 내면의 재판관인 양심이 있다. 그는 거짓과 참됨을 명확히 알고 있다. 양심을 품고 있는 우리에게 진실은 언제나 생명력이 있다는 것이다. 서로에게 성심을 다하는 고부간의 모습이 진정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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