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전 단양교육지원청 교육장·시인

 

[이진영칼럼] 이진영 전 단양교육지원청 교육장·시인

이것은 물론 군사 용어다. 탈환해야 할 고지가 바로 코앞에 있으니 아무리 적의 저항이 거세더라도 기필코 승리하자는 구호일 것이다. 이 진지하고 숙연한 구호 앞에 꽁무니를 빼는 군인은 비겁자이거나 이적 행위자다. 망설이던 사람도 무기를 다잡고 고지에 오르게 마련이다. 친구도 부모형제도 심지어는 목숨도 안중에 없다. 다만 우뚝 서 있는 고지, 그것 하나뿐이다. 고지 탈환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리거나 바쳐야 한다. 그리고 많이 버리거나 바친 사람은 영웅이 된다.

이 사고방식은 우리 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목표로 삼은 어떤 고지, 이를테면 원하는 대학교 진학을 위해서는 오늘 모든 것을 희생한다. 이웃과 따뜻한 눈인사도 생략하고 부모님의 생신도 건너뛴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처절한 입사 준비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한다. 명절도 포기하고 부모 찾아뵙기도 포기하고 형제자매와 친구 만나기도 미룬다. 이런 행위는 오히려 칭찬이나 권장을 받고 다른 이의 귀감이 된다.

그래서 목표한 고지에 오르면 맘 놓고 망가져도 괜찮은 것이 되기도 하고 큰 목표를 이룬 후의 허탈감이 물밀듯 몰려와 감당하기 어려워하기도 한다. 그 일탈을 즐기거나 허탈을 덮기 위해 술과 담배와 문란한 이성 관계와 불법을 저지르기 쉽고 심지어는 도박, 마약, 부정 등의 큰 유혹에 빠져 인생을 심하게 훼손하기도 한다.

이런 꿈은 권장되어야 하는가? 꿈 중에는 도구적 꿈과 수행적 꿈이 있다. 전자는 미래에 달성할 꿈이다. 따라서 오늘은 없다. 오늘은 희생하고 생략할 꿈이다. 요즘 많은 학교에서 추구하는 교육목표가 이에 해당한다. 좋은 대학에 합격시키기 위해 끝없이 학생을 닦달하므로 학생은 심신이 힘들고 고달프다. 열심히 공부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 고통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을까를 매일 생각하게 된다.

후자는 도구적 꿈을 가지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꿈을 말한다. 예컨대 미술가가 되고 싶다면 이는 도구적 꿈이다. 오늘을 희생하여 학원도 다니고 미술대학 입학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하기에 먼 미래의 꿈이 된다. 그러나 미술가가 되기 위해 보육원을 찾아가 아이들에게 그림 그리기를 가르친다면 이는 수행적 꿈이 되며 오늘을 성실히 살게 되는 것이다.

높은 자리에 올라야 영향력을 크게 발휘한다고 믿는 것이 도구적 꿈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하거나 타협해야 한다. 높은 자리에 가서 끼치는 영향력보다는 깨끗한 사람이 되어 끼치는 영향력이 더 크다. 세상의 빛이 되려면 어두운 곳으로 가야 하고 소금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녹는 자리에 가야 한다.

오늘 당장 사랑해야 한다. 오늘 당장 성실해야 한다. 그러자면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말아야 한다. 일상에서는 고지까지 다 오르지 않아도 괜찮다. 오히려 낮은 곳에 귀하고 아름다운 일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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