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일본의 수출규제를 둘러싸고 미묘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여러가지 제반 정황으로 볼 떄 일본이 한국에 대해 취한 조치는 단순히 경제적 차원을 넘어 정치적 보복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할 미국이 신중모드를 유지한 자체가 우회적으로 일본 측 손을 들어줬다는 주장까지 제기될만큼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문 대통령은 10일 삼성·현대차·SK·LG·롯데 등 5대 그룹을 포함해 총자산 10조원 이상인 국내 대기업 30개사 총수 및 CEO들을 청와대로 불렀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한 자리에서 우리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설명함과 동시에 한국 기업들에 대해 필요한 주문을 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대응조치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일본의 보복성 조치에 대해 만년무역적자를 기록 중인 일본산 자동차 수입규제를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늦은 감이 있지만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TF 팀을 만들고 후속대응책 마련에 전전긍긍하는 일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 이유는 일본의 이번 조치가 치밀한 사전준비를 거쳐 꺼낸 카드였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정부는 우리나라의 경제정책, 특히 교역시장을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실제 우리나라 경제는 아직까지도 수출주도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거기에 대기업위주의 경제정책은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의 약화로 이어져 내수경제의 기반을 흔들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중소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으로 대외적인 변수가 발생해도 그 충격이나 여파가 우리나라에 비해 크지 않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문 대통령의 말대로 이번 사태가 양국의 맞대결로 이어질 경우, 그 결과는 한·일 모두에게 이롭지 않다. 반도체 시장에서 시작된 파열음은 미국과 중국 등 또 다른 여파로 이어져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점도 우리정부가 국제적인 외교카드로 써야 할 중요 대목이다.

우리 정부의 외교적 해결 노력에도 사태 장기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문 대통령의 지적은 역설적으로 우리 경제의 취약점 등 체질을 총체적으로 살펴야 할 때라는 말로 해석된다.

당장 정부는 우리 기업의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수입처의 다변화와 국내 생산의 확대 등을 적극 실행해야 한다. 인허가 등 행정절차가 필요할 경우 절차를 최소화하는 것도 적절한 조치다.

대통령 스스로가 인정하듯 특정 국가 의존형 산업구조를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여기에 정부가 부품·소재·장비 산업의 육성과 국산화를 위해 관련 예산을 늘리고 세제·금융 등의 가용자원도 총동원하겠다고 한 것도 늦은감이 있지만 시기적절했다.

민간기업 또한 이번 사태를 교훈삼아 위기를 기회로 삼는 경영마인드를 준비해야 한다. 겉으로는 자유무역을 표방하지만 국가가 개입하는 신보호무역주의 흐름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서둘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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