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충청논단] 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사람들은 미래를 걱정한다. 인공지능 시대의 미래 교육, 미래 사회나 경제의 변화, 미래의 직업 등등. 그러나 걱정한다고 준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경제 보복이나 중국의 무역 전쟁은 많은 사람들이 미래 예견하고 걱정했지만, 그렇다고 준비를 철저히 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정작 일이 터지고 난 다음에 이에 대한 수습과 대책 논의로 바쁘다. 문제는 걱정만 한다고 해결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걱정을 안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걱정과 두려움이 습관처럼 몸에 배이면 자신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물든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통제하는데 몹시 서투르다. 그래서 해결방법이 없는 고민과 걱정에 끊임없이 매달리는 것이다. 그리고 종종 고민 때문에 머리가 아파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심각한 오류를 일으키기도 한다. 아마도 우리가 걱정이나 두려움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진화론적으로 생존에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두려움을 잘 느끼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위험한 환경에서 재빨리 도망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생존한 인류들은 걱정이나 두려움에 민감하다. 그러나 현대에 인간의 걱정과 두려움은 생존에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마치 비만이 진화적으로는 생존에 도움이 되었지만 현대에는 해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현명한 사람은 두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효과를 가지지 못하는 걱정과 두려움에 참여하지 않는다. 남들이 미래를 걱정할 때 그는 미래를 창조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라고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이자 교육자였던 앨런 케이는 말했다. 둘째는 일단 결정을 내린 다음,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지 않는 한 결정을 번복하거나 망설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언가 결정을 내린 다음에 뒷말이 더 많다. 어리석은 사람은 어떤 일을 할 때, 자신의 일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쉬기라고 하거나 당장 큰 일이 날 것 같은 신경쇠약에 걸려 있다.

우리나라 많은 부모는 늘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한다. 그런 행동이 부모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미화하지만, 나는 그러한 부모의 걱정이 우리나라 아이들의 정신적 성장을 가로막는 일종의 아동학대로 본다. 밤낮 쉬지 않고 공부하고, 학원가고, 1 등을 해야 한다는 간절한 부모의 바람은 아이들을 건강하게 성장시킬 수가 없다.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한 아이들로 이루어진 미래 세상은 희망적일 수 없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 ‘톰소여의 모험’에 나오는 글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허클베리는 자기가 내키는 대로 오고 갔다. 날이 좋을 땐 아무 현관 계단에서 잤고, 궂은 날엔 커다란 빈 통 속에서 잤다. 그는 학교나 교회에 갈 필요도 없었고, 주인이라 부르거나 말을 들어야 할 어느 누구도 없었다. 그는 멋지게 욕을 할 수도 있었다. 한마디로 그 아이는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아시다시피 톰과 허클베리는 엉뚱한 생각과 모험심으로 엄청난 보물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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