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주 선문대 교수

 

[세상을 보며] 안용주 선문대 교수

1910년 8월 22일에 조인되어 8월 29일부터 발표된 한일병합조약에 의해 대한제국은 일본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 조약이 맺어지기 전부터 일진회에 부역하던 송병준(창씨개명 1호, 노다 헤이슌(野田秉畯)은 일본에 직접 찾아가서 이토히로부미를 수차례 만나 ‘합병’을 강하게 요청한다.

일진회 회장이던 이용구, 송병준은 ‘합방청원서’를 제출한다. 일한합방상주문(日韓合邦上奏文)이라는 이 청원서에는 “메이지천황의 德과 소네 아라스케(曾禰荒助)의 바른 정치로 동양평화가 이루어졌다”며, “그러나 대한제국은 국시를 정하지 못하고 경국의 대본을 세우지 못하여, 강한 이웃에게 의존하고 민생을 살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천만 대한제국 백성을 위해 일본천황이 ‘일한합방 창설’이라는 결단을 내려준다면 황실과 백성이 다함께 은혜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 소원이다”고 적었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애국지사 정암 이태현선생은 한일병합조약이 이루어진 1910년에 태어났다. 경술국치를 크게 꾸짖는 수왜십죄(數倭十罪)를 적어 전국에 배포하고 광범위하게 항일운동을 전개하다 광복 3년을 앞둔 1942년 5월 23일, 33세의 젊은 나이로 일본헌병들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하고 자결하셨다. 정암 선생의 수왜십조의 열 번째 죄에 其十我邦土倭之罪尤大於彼讎夷(우리나라에 뿌리박은 토왜(친일파)의 죄가 원수 오랑캐보다 더욱 더 크다)고 적시하며, ‘후세에 지도자는 반드시 먼저 이 토왜(土倭)들을 처단해야 한다(後世王者作此土倭必先服罪也)’고 일갈하셨다.

역사학자 전우용교수는 1910년 대한매일신보에 ‘토왜천지(土倭天地)’라는 글이 실렸는데, 이 글에서 토왜를 ‘나라를 좀 먹고 백성을 병들게 하는 인종(人種)’, ‘얼굴은 한국인이나 창자는 왜놈인 도깨비 같은 자’라고 정의했다.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살면서 내부의 갈등을 끊임없이 유발시키고 자신은 정의로운 양 행세하며 양비론을 펼치는 얄팍한 엘리트지식인들이 어쩌면 오늘의 토착왜구, 검은머리 외국인이다.

제국주의는 특정국가가 다른 나라를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강제로 지배하려는 정책이나 사상을 가리킨다. 즉, 힘의 논리를 이용해서 특정지역이나 약소국가를 강탈함으로서 지배와 피지배의 역학관계를 형성시키고, 지배국민은 우월주의와 선민의식, 피지배국민은 패배주의와 사대주의를 형성시킨다.

19세기의 제국주의가 물러가고 식민지배를 받던 많은 국가들이 독립했지만, 정작 식민지배를 받았던 국가들에서 새로운 사상적 식민현상이 목격되게 되었는바, 식민지배국가에서 자국민을 상대로 상대적 사회지도층을 형성했던 그룹이 식민지배국가가 물러간 틈을 이용해서 자국민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심리를 노골화 했고, 이들은 지배층에게 배운 논리와 학습을 그대로 자국민에게 사용하는 자발적 식민시대를 만들어 갔다.

1945년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지 70년이 넘은 지금, 일본의 식민정권에서 엘리트계층으로 부역했던 친일그룹은 식민정권이 물러간 자리에서 친일의 대가로 받은 경제권력, 언론권력, 학문권력 등을 독점하면서 자국민을 상대로 식민사관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길들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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