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일본의 경제보복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수출규제조치도 모자라 이번에는 우방국 명단인 화이트 국가(백색 국가)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 1일 한국을 백색 국가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고시한데 이어 24일자로 의견수렴을 끝낸 일본의 다음 수순은 불 보듯 뻔하다. 경제적 카드를 이용해 정치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쯤은 이미 예견되어 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이 수순처럼 밟아가고 있는 일련의 조치들이 자국 내 여론을 정치적이고 외교적 사안으로 포장했다는 점이다.

급기야는 러시아 항공기가 한국 영해를 침범한 것조차 자국의 영토를 침범했다는 식으로 포장해 독도문제를 다시 국제분쟁거리로 활용했다.

일본의 우경화 정책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는 그런 단계를 넘어 치밀하고도 치졸한 방법까지 동원하며 한국을 압박했다는 점을 주목한다. 북핵에 대해 한·미·일 공조체제를 외치면서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는 미국, 그리고 미국에 맞서 북한과 밀월하며 자신의 지위와 지분확보에 나선 중국 등 한반도를 둘러싼 기류가 심상치 않다.

어떤 이들은 작금의 상황에 대해 마치 열강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구 한말과 유사하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문제인 대통령을 필두로 우리 정부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와 미국에 한국 대표를 파견한 데 이어 24일에는 일본 정부에 공식 의견서를 전달하는 등 개정을 막기 위한 전방위 대응에 나섰다.

일본 측이 주장하는 수출규제 조치의 사유에 대해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한·일간 무역분쟁이 세계경제에 있어서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일부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지나친 고강도 조치로 한·일관계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더 이상은 일본의 셈범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기조와 카드는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중재자 역할에 망설이고 있는 미국에 대해서는 한·미 공조체제가 한반도 정세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각인시키고 필요하다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파트너십에 일정 부분 협조해야 한다. 억지주장이라고 일축할 수 있지만 실질적 경제우방인 중국과 러시아를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방안은 유동적이다. 그 이전에 어떤 정책과 카드가 되었든 국민의 뜻을 묻고 모으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모든 권한은 국민으로부터 시작된다. 나라의 운명을 가늠할 수 있는 준엄한 현실 앞에서는 여야가 따로 없다. 

일본비판에 앞서 그들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이 속속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어쩌면 일본제품 불매운동보다 중요한 대목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대로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자세, 그리고 국민들의 뜻을 제대로 묻고 담는 정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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