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 서원대 교수

[내일을 열며] 이광표 서원대 교수

0 대 64.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한국 여자수구 대표팀은 14일 첫 경기에서 헝가리에 대패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사람들은 의아했다. 사연은 이렇다. 대한수영연맹은 국가대표팀을 5월말에 꾸려 6월 2일에서야 훈련을 시작했다고 한다. 남북 단일팀을 준비하다 무산되어 팀 구성이 늦어졌다는 말도 나왔다. 선수층도 엷은 수구인데, 훈련 기간마저 턱없이 부족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틀 뒤 러시아와 2차전을 치렀다. 1 대 30. 역시 어이없는 대패였다. 하지만 그나마 한 골을 넣었다. 점수차도 64골에서 29골로 줄어들었다. 감격한 대표선수들은 경기 후 서로를 얼싸안았고, 관중들도 환호했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크게 졌지만 희망을 쐈다” “수구 ‘우생순’의 막이 올랐다” 는 제목이 등장했다. 수구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불과 한 달 남짓 연습해 세계적인 강팀을 대상으로 한 골을 넣었으니, 이제 희망이 보인다는 말이다.

정말 그런가. 뒤집어 생각해보자.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출전하면서 한 달 전에서야 팀을 꾸린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수영연맹은 “남북단일팀 무산” 운운 하지만, 그건 모두 변명이다. 나라망신도 보통이 아니다.

한심한 작태는 또 있다. 다름 아닌 유니폼 파동이다. 대한수영연맹은 이사회 결정을 뒤집고 이달 초 후원사를 바꾸느라 대표팀 유니폼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그렇다보니 ‘KOREA'가 적힌 유니폼이 아니라 일반 판매용을 구입해 브랜드 로고를 테이프로 가린 채 지급했다. 오픈워터 대표팀 선수들에겐 규정에 맞지 않는 수영모를 지급해 선수들이 실격할 뻔하기도 했다. 그 때 선수들은 수영모에 매직으로 'KOR'를 쓴 후 경기에 나서야 했다. 말문이 막혔다. 그런 선수들을 보니 전쟁통에 출전한 가난한 나라의 대표팀 같았다.

대한수영연맹은 유니폼 사태에 대해 23일 사과했다. 사과문에 이런 문구가 있다. “예기치 못한 연맹의 부주의와 관리 소홀 등으로 인하여 결국 선수단 용품 지급과 관련하여 크나큰 과오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예기치 못한’ 이라니. 자기들이 부당한 짓을 저질러 놓고는, 마치 우연히 일이 발생한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한 것은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대한수영연맹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문장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지’ 라는 표현은, 자신이 책임이 없는데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책임을 질 때 주로 쓰는 표현이다. 지금의 수영연맹이 쓸 수 있는 표현이 아니다. 이번 사과문은 위선이다.

수구대표팀 선수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그렇기에 수구 여자대표팀의 첫 골은 감격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첫 골에 대해 찬사가 자칫 대한수영연맹에 면죄부를 주지 않을까 두렵다. 허송세월 하다가 겨우 한 달 앞두고 팀을 급조하더니, 대표팀 유니폼과 수영모 하나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수영연맹. 그런 연맹은 희망을, 우생순을 말할 자격이 없다. 대한수영연맹은 국민을 모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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