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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日常)의 행복황종환 칭화대학 SCE 한국캠퍼스 교수 (한국자산관리방송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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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25  14:3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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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황종환 칭화대학 SCE 한국캠퍼스 교수 (한국자산관리방송 논설실장)

바람한 점 없는 밤이 되면 무더위로 인해 온 몸이 흠뻑 땀으로 적셔진다. 잠을 못 이룰 만큼 더운 여름이다. 요즘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하나같이 시원하거나 상쾌해지는 기분을 느끼지 못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각종 언론이나 방송에 다루어지는 국제 문제나 국내의 정치 경제 상황에 대한 보도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꽉 막힌 듯 막막하고 답답하다. 그야말로 열대야만큼이나 사람들을 짜증스럽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남쪽에서 장마가 올라온다는 소식에 한편으로 피해를 걱정하면서도 한바탕 소나기라도 쏟아져 불편한 파편들이 말끔하게 청소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최근 경제동향분석 자료에 따르면 제조업의 고용 · 생산 · 설비투자 모두 감소가 지속되고, 6월 수출은 반도체, 석유화학 등 주요 핵심 산업의 수출액이 감소하여 전년 동월대비 13.5% 하락하여 7개월 연속 감소하였고, OECD 경기선행지수는 2017년 6월 이후 23개월 연속 하락되고 있다는 결과가 발표되었다. 일본과의 무역 분쟁과 국내 정치 대립으로 문제가 단시간 내에 해결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요즘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일이 고난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고통은 삶의 균형이 무너진 가운데 일어나는 현상이다. 참기 어려운 고통은 현실에서 가진 것보다 욕망이 크기 때문에 나타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균형을 맞추려고 현실의 저울에 무언가를 더 올려놓으려 애를 쓴다. 하지만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현실의 저울에 올려놓는 것만이 아니라 욕망의 저울에서 덜어내는 방법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자신이 본래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올바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아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인정하거나 사랑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연한 기회를 잡을 수 있지만 올바른 선택은 자신을 제대로 아는 사람만이 가능하다.

얼마 전 지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잠을 자다가 전기누전으로 화재가 발생하여 사고를 당하였다고 한다. 천만다행으로 부부가 함께 연기에 질식된 상태에서 집 밖으로 뛰쳐나왔으나, 부인의 만류에도 무언가 꺼낼 것이 있다면서 다시 들어갔다는 말에 더욱 안타깝다. 70대 초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수업이나 각종 모임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셨던 분이다. 훤칠한 키에 호남형인 노신사의 우아한 피아노 반주와 멋진 테너 음색이 참 매력적이었다. 늦은 시간에 가끔 집 앞까지 모셔다드릴 때면 행복한 노후를 위해 평소에 예술분야 취미활동을 꼭 준비해야한다는 말씀과 격려를 해주셨던 기억이 떠올라 황망함에 머릿속이 텅 비어버리는 듯하다.

아직도 꿈을 꾸고 있지만 한때 그림과 색채에 심취한 적이 있다. 삶에 지치고 고단할 때면 색채가 강렬하고 화려한 꽃 그림에서 위로받고 감동하였다. 지금도 그림을 보면서 가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릴 때가 있다. 그림의 이미지가 슬퍼서가 아니라 작가가 표현하는 삶의 깊이가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꽃밭에서 아이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미소 짓는 그림을 보면 기분이 한결 포근해진다. 하지만 어른의 기쁨에서는 무언가모를 삶의 지난한 고통을 회상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마음에 때로는 가슴이 아프다. 정말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이른 아침에 저 멀리 보이는 관악산 정상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빠진다. 생각하지도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삶의 문제가 발생하여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오직 절대자 외에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도하거나 계획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일상의 사소한 고통에도 슬퍼하는 것은 혼자만이 겪는 아픔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슬픔을 이길 수 있는 용기는 지혜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티끌보다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

밤이 지나면 다시 아침이 다가온다. 하늘의 별들이 보이지 않지만 초롱초롱 빛나듯 세상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움직인다. 예술은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라는 감정을 선물로 가져다준다. 예술적 교감을 통한 짧은 만남이 질긴 인연으로 가슴 한쪽을 가득 채운다. 비록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행복이다. 저 멀리 산등성이를 묵묵히 땀 흘리며 걸어가는 모습에서 존재적 의미를 찾을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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