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법혜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충청산책] 김법혜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오래된 인권과제다. 그런데도 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 피해는 날로 증가 추세다. 심지어는 사망에 이른 피해자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여서 충격적이다. 한국으로 시집 온 이주여성들은 체류자격에 발목이 잡혀 가정폭력을 견디거나 숨기려 하고 있어 심각하다.

 얼마 전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과 아동에 대한 참혹한 폭력행위 영상이 공개되면서 이주여성의 인권 증진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기준 15만9000명에 달하는 결혼이주여성이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결혼 이주여성이 이혼할 때 이혼의 '주된' 책임이 한국인 배우자에게 있다는 점만 증명하면 결혼이민 체류자격을 연장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의 새로운 판결이 나와 이주여성에게 희망을 줬다. 기존 판례는 이혼의 책임이 '전적으로' 한국인 배우자에게 있어야만 가능했다. 이번 판결로 배우자의 부당한 대우를 견디다 못 해 이혼했다가 추방 위기에 놓인 결혼 이주여성들이 보호받을 수 있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들이 폭력 피해를 보고도 신고를 꺼리는 것은 배우자가 국적 취득에 결정적인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 배우자의 절대적인 권한이 폭행의 이유가 되고 있다. 이주 여성의 체류자격 연장허가 때 배우자가 국적 취득, 외국인등록증 발급, 비자 연장, 영주권 신청 시 남편의 신원보증이 필수여서 신분이 안정될 때까지는 폭력을 당해도 신고를 못하고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UN 사회인권위원회나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권고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지난 20년간 한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 간 혼인은 연평균 약 2만 쌍에 이르고 있어 2018년 국내 다문화 가정은 30만 가구를 넘어섰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사는 결혼 이주여성은 거의 절반이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과 그들의 아이는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이다.  결혼 이주 여성들의 인권 침해는 더는 남의 일이 아닌 우리 이웃의 일, 바로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주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로 인한 사회적 고립은 그들을 또 한 번 울게 만든다. 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을 막으려면 무엇보다 인권교육을 강화하고 시스템과 안전망을 촘촘히 정비해야 한다. 신원보증제의 경우 자녀가 초등학교 취학연령이 되면 혼인의 진정성을 인정해줘 이주여성이 단독으로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할 필요도 있다. 우리 사회의 후진적인 인권의식을 높이는 길을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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