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련 사회복지사

[백목련] 정혜련 사회복지사

오랜만에 출장 온 서울은 친절하지 않았다. 내리쬐는 햇빛에 온 몸이 녹아내리는 듯 했다. 새벽부터 억지로 깨워 데리고 온 내 몸을 골리려는 듯 지갑에서 빠진 신용카드를 찾으러 지하철역 입구에서 고속버스까지 달려 올라가야 했다. 얌전히 사무실안에서만 돌아다니던 몸과 마음이 요동을 쳤다. 신용카드를 찾아서 지하철을 탔는데도 두근거리는 심장과 차오르는 숨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지하철을 탄지 20여 분이 흘렀을 때, 땀이 식으며, 마음이 안정되자 주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공통점도 없이 우연히 이 시간 나와 함께 지하철을 탄 그들에게 무심코 시선이 갔다.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생김새도 제각각인 그들은 놀랍게도 한결같이 똑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지루한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만약 저들이 자신을 본다면 매우 놀랄 것이다. 그리고 든 생각은 “나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겠지.” 지하철을 타기 전까지 겪은 지친과정으로 무표정을 넘어 불편한 표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불편한 표정은 불편한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요, 내 업무에 필요해서 온 출장을 불편한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 순간 내 마음과 몸이 전해주는 이야기가 들렸다. “아무렇지도 않았던 계단을 걷는데 숨이 차는 걸 보니, 너 폐활량이 줄어든 것 같아!”, “신용카드가 이번에만 빠지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지갑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계속 미뤘는데, 더 이상 너를 불편하게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 “더위도 더 타는 것 같다.” 내가 들어주기 시작하자, 내 몸과 마음은 수다를 멈추지 않았다. “사실 이제야 말인데, 네가 좋아하는 디자인을 못 입고 편안한 옷만 찾게 된 거 알아?” 내가 깜짝 놀란 것을 감추고 싶으나, 언제나 그랬듯 내 몸과 마음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 알았어.” “출장 다녀와서 좀 돌아보고, 너희들 얘기도 들을게.” 지하철이 목적지에 도착할 무렵 미소가 지어졌다.

부지런히 움직인 덕에 교육받을 자리를 선택할 수 있었고, 여유로웠다. 안경을 놓고 온 나의 기억력을 탓하는 대신 맨 앞자리에 앉아 알찬 하루를 보냈다. 점심시간에는 근처 맛집을 검색해 찾아갔다. 유명한 집인데도 가격이 합리적이고 무엇보다 맛이 훌륭했다. 고르게 썰어진 다양한 채소와 해산물의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완벽한 소스와 탱글탱글한 면발은 줄서서 기다린 나의 노력에 보답했다. 식사를 마친 후 요즘 세대 말로 ‘힙(hip)하다’(멋지고 트랜디하다는 속어)는 흑당버블티도 마시며 나를 응원했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카를 융(Carl Jung, 1875년 7월 26일~1961년 6월 6일)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이야 말로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지름길이라고 했다.” 또한 미국의 심리학자 칼 로저스(Carl Rogers, 1902년 1월 8일~1987년 2월 4일)은 “누군가와 오랜 대화를 나눈 끝에 치유 받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가?” “누군가와 특별한 관계를 맺으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호감을 되찾은 적은?” “만약 그렇다면 이는 믿을 수 있고 개방적이고 솔직한 상황에서 두 사람 사이에 상호작용이 일어날 것이다.” 라고 말했다.

출장 가는 날 겪은 나의 불편함은 나의 몸과 마음을 이해하게 했고, 그들과 대화하자 ‘행복’을 선물로 받았다. 그 행복의 정점은 바로 지금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이 순간 하이든의 트럼펫협주곡이 나를 꿈과 상상력의 세계로 데려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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