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수요단상] 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예전에 한 TV 프로그램에서 하는 게임을 본적이 있다. 게임을 하는 사람은 준비되어 있는 두 개의 고무공을 멀리서 확인을 하고 하나를 선택한다. 그럼 저 멀리서 그가 선택한 고무공을 힘차게 던져준다. 그럼 고무공을 선택한 사람은 멋지게 점프해서 헤딩으로 공을 날려보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준비된 고무공은 하나는 그 안에 공기가 가득 들어 있지만 다른 하나에는 물이 가득 들어 있다. 만약 물이 든 공을 선택했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멋지게 헤딩을 성공한다고 해도 공이 너무 무거워서 자기 자신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나가떨어지는 꼴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겉으로 보면 똑같아 보이는 공인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느냐에 따라서 쉽게 튕겨낼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허풍’이 바로 이와 같다. 허풍은 겉으로 보면 무엇인가 대단한 것이 가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공기로 가득한 공처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저 멀리 걷어 찰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얼마나 위대하고 대단한 사람인지를 알리지 못해 안달이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만나는 자리인데 마음의 대화가 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학력이나 재능, 혹은 과거 자신이 이룬 업적을 소개하는 이야기들만 가득할 뿐이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만나도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두 남녀가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기 위해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상대방의 마음이나 생각이 이 아니라 현재 그가 머물고 있는 주변의 환경이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어느 직장을 다니는지, 또는 그가 가진 재산이 얼마인지, 그의 집안 배경이 무엇인지 등을 따져보고 그의 사람 됨됨이를 판단하는 것이다. 마치 예전에 본 TV 프로그램의 장면과 같이 모두들 물이 든 무거운 공을 피하고 가볍게 튕겨낼 수 있는 공기로 가득한 공을 찾으려고 안달이 난 사람들 같다.

물로 가득한 공은 무겁다. 그래서 이 공을 가지고 놀려고 해도 참 쉬운 일이 아니다. 발로 차면 발이 아프고 손으로 던져보았자 그리 멀리 날아가지도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가벼운 공을 더 선호한다. 그런데 사람의 경우는 어떤가? 그가 마치 공기로 가득한 공처럼 가볍다면, 그래서 내 마음대로 그를 움직이고 다루는 것이 쉽다고 한다면 그는 정말 내게 큰 유익을 주는 사람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성경을 보면 예수가 처음 베드로를 제자로 삼았을 때 베드로의 모습이 마치 이 공기로 가득한 공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예수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에 관해 미리 말해 주었을 때 베드로는 그 앞을 가로막으며 자신이 있는 한 그와 같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그러나 결과는 무엇인가? 그는 예수가 제사장들의 손에 잡혀갈 때 자신은 예수를 알지 못한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다.

공기처럼 가벼운 사람, 그래서 다루기 쉬운 사람은 말 그대로 ‘허풍’이 가득한 사람일 뿐이다.그럼 우리는 공기처럼 가벼워 다루기가 쉬운 사람과 늘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 그래서 조금 다루기 어렵고 내 뜻대로 그 마음을 움직이려 해도 쉽게 요동하지 않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을 더 선호하는가?

만약 내 자신의 유익이나 편리함만을 바라보면서 늘 내 편에 서 주는 사람, 늘 내 말에 쉽게 움직여 주는 사람을 선호하고 더 대우한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세상에 허풍쟁이들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내가 보기에 좋다고 해서 그것이 다 옳은 일은 아니다. 오히려 내 자신이 더 좋고 옳은 일이 무엇인지를 살펴 나의 생각과 시선과 기준을 바꾸는 것이 내게 더 유익인 것이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를 허풍쟁이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 역시 그가 허풍쟁이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모두를 위한 더 큰 유익이며 더 올바른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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