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야, 너는 그것도 모르냐? 무식하기는." 이런 비꼬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우리는 열심히 공부한다.

그런데 공부를 할수록 모르는 것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늘어난다는 묘한 진리에 부딪히게 될 때 우리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와 같은 학문의 겸손을 배우게 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가장 큰 두려움은 학생들의 질문에 교사가 답을 못 할 때이다. 교사는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은 교사를 거짓으로 아는 척 하게 만들거나 혹은 학생에게 "그것도 몰라서 질문하느냐?"는 식의 비난을 통해 질문을 하는 상황을 차단하는 행동으로 이끈다.

이러한 비교육적인 교사의 태도는 질문이 없는 교실을 만들고 학생들의 사고를 죽인다. 문제의 발생은 '다른 누군가가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 말을 바꾸면 '다른 누군가가 알아채기 전까지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데 대한 두려움일 수 있다.

내가 모른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모른다는 것을 내가 몰랐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챈 '학생'은 교사의 '권위'를 손상시킨 것이라는 무지에 대한 분노가 상황을 악화시킨다. 하지만 진정한 지식은 질 높은 무지를 만들어 낸다.

내가 아는 것이 명료해지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저절로 알게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무지를 알게 되면 질문을 만들 수 있다. 

오늘날 질문 있는 교실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먼저 무지를 가르쳐야 한다. 진정한 교육은 무지를 깨닫는 과정, 무지를 알아보는 법, 무지를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안다는 것을 아는 것', '안다는 것을 모르는 것',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 그리고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의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지식은 '모른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일 것이다. 과학에서 오랫동안 양자역학에 대한 논쟁이 지속됐다.

확률론적 사고를 필요로 하는 양자역학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는 말로 틀린 지식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양자역학을 받아들인 과학자들은 마치 자신들이 아는 것처럼 떠들었다.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만은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말로 당당히 커밍아웃했다.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아는 척 하지 않고 모름에 대한 인지를 가치 있게 여긴다.

우리는 무지에 대한 인지의 가치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아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사고로부터 모름을 가르쳐야 한다는 사고로의 전환은 매우 혁명적이다. 그래서 무지에 대한 추구(The pursuit of ignorance)라는 TED 강연도 있다.

학생의 질문에 대해 "어? 너는 내가 모른다는 걸 알아차렸네! 나도 몰랐는데, 정말 훌륭하다." 이렇게 칭찬해 줄 수 있는 교사가 있다면 그는 진정한 의미의 '앎'을 이해한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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