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 건양대 교수

[박기태 건양대 교수] 폭염으로 푹푹 찌는 날씨다. 에어컨의 연한 기계음만이 우리를 위로해 주듯이 윙윙 돌아가고 있다. 그런 까닭에 여름 한낮 아황산가스가 배인 비릿하면서도 뜨겁게 달구어진 공기가 꽉 들어찬 거리와는 다르게 실내에는 서늘하고 촉감 좋은 공기로 가득하다. 하지만 무더위의 포로가 되어 갇혀 있다는 사실은 분명 우리가 뜻한 바는 아니기에 괜스레 가끔씩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막연히 계절의 탓이겠거니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때 일수록 단순한 마음가짐에서 올 수 있는 현상이라고 여기면서 무엇인가 심오한 도취된다면 무더위 쯤 은 거뜬하게 극복할 수도 있다고 본다.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베르베르(Bernard Werber)라는 사람이 있다. ‘유머의 생산과 유통’ 을 중심소재로 범죄 스릴러, 유머집, 그리고 역사 패러디의 속성을 혼합적으로 집필한 독특한 그의 장편소설『웃음』에는 요즘처럼 100세 시대를 운운하는 우리가 훗날에 인생을 되돌아 볼 수 있고 지표가 될 수 있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2세 때는 대, 소변을 가리는 것이 자랑거리, 3세 때는 이가 나는 것이 자랑거리, 12세 때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자랑거리, 18세 때는 자동차 운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자랑거리, 20세 때는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자랑거리, 그리고 35세 때는 돈이 많다는 것이 자랑거리라는 내용이다. 그 다음이 50세인데 여기에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이때부터는 자랑거리가 거꾸로 된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50세 때는 돈이 많은 것이 자랑거리, 60세 때는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자랑거리, 70세 때는 자동차 운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자랑거리, 75세 때는 나를 알아주는 친구들이 남아 있다는 것이 자랑거리, 80세 때는 음식을 씹을 수 있는 이가 남아 있다는 것이 자랑거리이며, 그리고 85세 때는 대, 소변을 가릴 수 있다는 것이 자랑거리란다.

결국 우리의 인생이란 원초적인 것에서 시작하여 많은 것들을 배워 자랑스러워 하다가 사는 날 동안 원초적인 것을 내 손으로 가리는 걸로 마감 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그다지 자랑스러울 것도 없고 욕심과 허영에 절어 살 것도 없기 때문에, 훗날 세월의 뒤안길에서 슬퍼하면서 한 많은 외로움에 서성이다가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되지 않기 위해 오늘 하루도 선물 받은 것처럼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행복해지고,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 같다.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산다는 것이 단순히 호흡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인가를 하는 것이다.” 라고 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이다. 따라서 젊어서는 활발한 활동을 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고 늙어서는 원초적인 삶의 궁극적 의미를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 앞에 던져진 내적인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우리의 과제일지도 모른다.

문득 나이가 들어 늙어서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자랑거리라는 내용이 마음에 와 닿는다. 힘도 없고 돈도 없으며 볼품이 없어도 친구란 본디 나무와 같아서 소리 없이 조용히 눈빛만 바라보아도 서로를 위해 웃을 수 있고 울 수도 있기 때문에 늙어서도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에 내 주변을 다시 한 번 돌이켜보면서 무더위를 잊기 위한 깊은 사색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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