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 충북교육삼락회장

[오병익 충북교육삼락회장 ] 사람들은 보이려고 광(光) 내는데 / 구두 닦고 자동차를 닦고 / 제 집 유리창을 닦고, / 거울 앞에서 제 모습마저 믿기잖아 / 몇 번씩 닦아내며 보고 또 보는데, / 엉뚱한 광(光)은 잘 내면서 / 누구하나 뽀얗게 제 속 닦는 이 없는데./ 필자의 시 ‘걸레’ 전문이다. 늙음, 적자생존의 구도 속에 광(光)깃든 노인 찾기가 어려운 때다.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고래고래 소리 질러 봤자 손가락질로 돌아온다. 몸부림치다시피 평생 일군 목록조차 한 순간 무너져 실의를 딛는 별 희한한 꼴도 본다.

최근, 노인 학대와 폭력에 살인까지 험악한 세상, 때론 늙은 게 부끄럽다. 고령화 문제로 자주 가슴을 후린다. 세대 간 갈등이 얽혔다. 호흡 빨랐던 전반기 그림은 끊어지고 앞으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까 이런저런 조합에 허덕인다. ‘아플 때, 신세져야할 때, 냄새날 때’를 철저하게 외면한 덧없음이다. 장수시대 삼분의 일인 후반기 저문 삶, 분명 숙련된 미래이고 흥미로운 오페라 아닌가.

지난 달, 충청북도체육회 주최 단양에서 영동까지 '제7회 충북종단 대장정'이 펼쳐졌다. 140여명 참가자 대표로 단기(團旗)를 수여받은 퇴직교원단체인 충북교육삼락회부회장과 회원 3명도 4박5일 동안 펄펄 끓는 200km 긴 길을 완주, 울컥한 감동의 주인공이 됐다. “행여 탈락할 까봐 뒤꿈치 물집을 혼자 추슬렀다” 는 예사롭지 않은 노익장 ‘우와! 대단하다’ 맞다.

그렇듯 대장정 일행이 입에서 쓴 내가 날 때, 필자는 일흔 중반 교직 선배로부터 단편집(행복은 여기에) 한 권을 받았다. 작은 쪽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어느 사찰 법당 출입구 주지 스님의 책, 보시한 내용이 좋아 보내드리니 찜통더위 쯤 이기시도록…” 받기 무섭게 나부터 읽고 아내차례로 삼매경에 들었다. 사자·나귀·여우 우화는 ‘내리막’의 서성거림을 채찍한 인생 울림이어서 부끄러웠다.

“꼰대, 미쳤어 짜증나~” 화난 소리로 식당을 나오며 격하게 반응한다. 예약시간보다 훨씬 앞당겨 자리하면 식사 끝난 시간 반 정도 뭉그적거린다. 연신 불러대는 ‘이모’ 도 부글부글 끓다 “문 닫을 시각인 데요” 몇 번 다그쳐야 ‘슬퍼 못 견딜 소리’라며 마지못해 일어선다. 젊은이에겐 공기처럼 편한 IT가 나이 들수록 그림의 떡이다. 메뉴를 고르고 주문하는데 서툴러 연령제한 카페까지 등장했다. 이유 있는 항변에 외식조차 발 묶일 위기다.

원하든 원치 않던 고령사회 눈물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노인끼리만 모여 살 순 없잖은가. 낄 자리와 설 곳조차 분별 못하는 ‘체면 실종’을 어쩌랴. 어른 노릇, 생각처럼 쉽지 않다. 참된 나를 찾는 근육부터 키워야 한다. 영향력 있는 동력으로 꼽히려면 의식부터 유화적 접근이 필요하다. 거울 앞에서 제 모습마저 믿기잖아 몇 번씩 닦아내며 보고 또 보는 엉뚱한 닦기를 넘어 염치를 닦는 품격, 노인 존중문화의 지름 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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