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 추풍령중 교사

 

[기고] 김기훈 추풍령중 교사

모든 종류의 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다. 육고기, 물고기, 우유, 계란을 모두 거르는 채식주의자를 비건이라 부르는데, 처음부터 너무 세게 나간 셈이다. 일단 2019년을 시작하는 날 '비건 지향' 선언을 했고, 그 뒤에 본격적으로 채식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제1회 비건 캠프'에도 참가했다. '새내기 비건 단기속성과정’으로 4달을 보내면서, 내 삶의 많은 부분이 변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신체적 변화다. 스쾃처럼 간단한 운동을 제외하고는 다이어트 목적의 어떠한 활동을 하지 않았음에도(오히려 식사량은 늘었다.), 6kg 정도 살이 빠졌다. 기관지가 약해 호흡이 힘든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지금은 훨씬 덜하다. 연일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도 예전만큼의 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확실히 건강해졌다.

사실 더 큰 변화는, 마음의 변화다. 2009년 광우병 촛불집회, 2010년 구제역 살처분 등을 겪고 고기를 ‘즐기는’ 삶에 불편함을 느꼈었는데, 이제는 타자를 고통스럽게 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느꼈다. 밥 먹는 일이 신경 쓰이는 만큼 음식에 대해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더 많은 ‘맛’을 느끼면서 식사가 더 즐거워졌다. 이렇게 채식을 통해 얻는 보람과 기쁨, 깨끗해지는 느낌 등 마음의 변화가 신체적 변화보다 더 값지게 느껴졌다.

동네 작은 책방에서 김한민 작가의 '아무튼 비건'을 집어든 일이 이렇게 내 삶을 격렬하게 뒤흔들지 몰랐다.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공장식 축산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우리에게는 폭력적으로 동물의 자유를 억압할 권리가 있는가. 의도를 했든 안 했든 우리는 그 폭력에 동참을 한 채 현실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식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아무튼, 비대해진 '공장식 축산'은 동물들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것조차 누리지 못하게 하며, 지구를 빠른 속도로 파괴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끔찍한 사육 환경에 지나친 호르몬, 항생제 사용, 엄청난 양의 분뇨(돼지 5만 마리는 매일 227톤의 분뇨를 배출한다.)도 문제지만, 지구상 모든 탈 것보다 많은 온실가스 배출량, 사료와 농장을 만들기 위해 파괴되고 있는 숲, 농장에서 과도하게 소모되는 깨끗한 물도 큰 위협이다. 이 모든 것들은 다음 세대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를 파괴하고 있다.

미래 세대들은 지구를 지키기 위한 직접 행동에 나서고 있다. 지난 3월 15일, 세계 100여 개국에서 청소년들이 기후 변화를 막자는 요구로 등교 거부 시위에 참가했다. 그 기사를 보며, 우리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동안 학생들은 자신의 행동이 지구를 공유하는 다른 생명들 혹은 미래 세대의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생각해볼 기회가 적었다. 생명의 존엄에 대해 느끼고 ‘고기 없는 삶’을 상상하는 공부 기회도 적었다. 쉴 틈 없이 경쟁하며 자신이 성공하기 위한 공부를 너무 많이 해왔다.

학교에서 ‘고기 없는 삶’ 교육을 필수 과정으로 운영하는 상상을 해본다. 이 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은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는 능력을 회복하고 지속가능하면서도 좋은 삶에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 한편 신체적으로도 더욱 건강해질 것이다. 비만 등 다양한 병에서 조금 더 멀어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학생들이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모두와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며 건강한 신체로 살면서 이에 보람과 기쁨을 느끼는 것, ‘고기 없는 삶’ 교육의 교육적 가치는 여기에 있다. 이미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등에서는 주1회 채식 식단이 제공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전북 등이 ‘고기 없는 월요일’을 실천하고 있다. 우리 지역도 이 흐름에 함께 하며, 건강하게 변화하면 좋겠다.

지구의 날을 맞아 전교생이 지구를 구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열중했다. 그 중 한 무리가 ‘채식’을 주제로 프로젝트를 했다. 학생들은 자신이 먹는 고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르는지 처음 ‘인식’하게 되었고 무척 놀라워했다. 26일 하루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 채식을 해보겠다는 학생도 나타났다. 나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학생들은 ‘모두와 연결되는’ 첫 발을 내딛은 셈이다. 더 많은 ‘첫 발’들이 학교에서 시작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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