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 전 언론인

[김종원의 생각너머] 김종원 전 언론인

혹시,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란 용어를 아시는지?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정체성 정치는 전통적인 다양한 요소에 기반한 정당 정치나 드넓은 보편 정치에 속하지 않고 성별, 젠더, 종교, 장애, 민족, 인종, 성적지향, 문화 등 공유되는 집단 정체성을 기반으로 배타적인 정치 동맹을 추구하는 정치 운동이나 사상을 이야기한다.
 

이를 요약한다면, 정체성 정치란 자신이 가진 정체성, 자신이 지지하고 속해 있는 집단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정치를 말한다. 어떤 면에서는 외골수에 가깝다. 그래서 정체성 정치는 협상과 타협, 견제와 균형이 필요한 민주주의 정치에 가깝지 않다. 오히려 일방적인 내편, 네편 가르기를 통해 분열을 촉진하는 역할마저 하고 있다. 선거에는 유리할지 모르지만, 정치가 통합을 목표로 한다고 보면 방향이 틀렸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 취임이후 지난해 정계은퇴 선언을 한 폴 라이언 전 하원 의장은 인터뷰를 통해 "정체성 정치가(identity politics) 활개치고, 21세기 테크놀러지가 그것을 더욱 부추기며, 불길을 부채질하는 것이 요즘 내가 정치에 대해 갖고 있는 큰 걱정거리이다. 이런 극단화 때문에 이 나라에서 정치적 선의 (political goodwill)를 가지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토로한 바 있다. 그는 "나는 분열을 착취하는게 아니라 사람들을 통합시키는 포괄적이며 열망에 찬 정치(inclusive, aspirational politics)를 강하게 지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체성 정치가 확장되면, 정쟁이 심해진다. 당연하게도 정책적 판단에 찬반 양론이 항상 극명하게 갈라진다. 사회갈등 역시 커진다. 상대편이 하는 이야기는 듣지도 않는다. 그게 맞다고 쳐도. 그래서 이런 정치는 올바르지도, 보편화되서도 안된다. 경청할 마음이 없는 정치는 결국 일방통행식 정치가 된다. 아무말 혹은 막말을 해도 내게 지지를 보내는 내편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정한 내편은 내게 훌륭한 조언을 해줘야 한다.

 
민주주의 정당정치의 핵심은 보편적인 인식에 기반한 통합지향적 정치다. 각 정당들은 보편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쌍방통행 정치를 해야 한다. 물론, 정당 내부에서도 이런 논의가 활발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상대방을 인정할 때, 서로가 견제할 때 훨씬 더 성숙된다. 정치란 공동체 구성원을 편안하게 해주는 도구다. 정치를 통해 해결해야 할 것은 사회갈등이다. 정치를 통해 사회적 통합을 이루고 이를 동력으로 삼아 지속적 성장을 해나가야 한다. 정치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된다.

 
강을 건너면 타고 온 배를 버리고, 고기를 잡으면 통발을 잊어버려야 한다. 권력을 향한, 권력을 위한 정치가 될 때 그 정치는 오히려 사회 통합의 걸림돌이 된다. 정치가 국민을 걱정해야지,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면 안된다. 중국 요순시대 이야기 한 토막. 왕이 평민복장으로 암행을 나갔다. 농사를 짓는 농부를 발견하곤 물었다. "이 나라 임금의 이름이 무엇이냐." 농부의 답변인즉 "지금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임금의 이름따윈 알아서 무엇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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