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전 청주고교장·칼럼니스트

 

[김재영칼럼] 김재영 전 청주고교장·칼럼니스트

젊은 날 청운의 뜻을 품고 시작된 직장생활, 몇 차례 직장을 옮기며 마지막 자리를 잡은 교직(敎職), 32년 6개월의 마침표를 찍고 교단을 떠나 소시민으로 돌아와 가족의 품에 안긴지 13년의 세월이 흘렀다. 공인(公人)은 정열을 바쳐오던 직장에서 자의든 때로는 타의든 떠날 때를 맞게 된다.

채근담(菜根譚)에 "하던 일을 사양하고 물러서려거든 마땅히 전성기에 물러서라. 아울러 몸을 두는 곳은 마땅히 홀로 뒤쳐진 곳에 자리 잡으라"고 했고, J. 스타인백은 작품 ‘불만의 겨울’에서 "인간에게는 온당한 존경을 받으며 은퇴해야 할 시기가 오기 마련이다. 그것은 극적인 것도 아니고 자신이나 가족에게 벌을 주는 것도 아니다. 단지 작별을 하고, 목욕을 하여 기분을 가다듬고 그리고 면도날을 들고 따뜻한 바다로 가는 것이 그것이다"라고 했다.

지난날 정치거목(巨木)으로 충북인의 자존심을 지켜 주시던 한 정치인이 한참 일하실 나이인데 은퇴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후 한 번도 공식적인 자리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서거하셨다는 신문기사를 보았을 때 존경하는 마음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었고 그 분이 충북출신이란 게 자랑스러웠다. 공인(公人)은 시작할 때 보다 떠날 시기를 알고 물러서는 것이 시작보다 더 중요함을 느끼게 했다.

정치인들 중에도 젊은 나이에 공직에 들어와서 승승장구하여 장관과 당의 요직을 거치고 국회의 요직을 거친 다선의원으로 70대에 다시 국회의원에 입후보했다가 젊은 입후보자에게 참패하여 노후에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쓸쓸하게 떠나는 모습을 보니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안쓰러워 보였다. 당(唐) 개국일등 공신이었던 이청(李請)은 물러나기를 청하고 관직을 떠났으나 다른 공신들은 고종이 즉위하자 한신, 팽월, 경포는 여후(呂候)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때를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서야 할 자리, 물러날 때를 알고 축복 속에 떠나는 모습은 아름답다. 떠날 시기를 알고 아쉬운 듯할 때 떠나서 그 동안 돌보지 못한 가정을 돌보며 공인(公人)의 자리를 떠나 자연인(自然人)인 소시민의 모습으로 제2의 인생을 찾음도 의미 있는 일이다.

회남자(淮南子)에 생기사귀(生寄死歸)라고 “사는 것은 잠시 머무는 것이고 죽는 다는 것은 본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했고, 인생을 뜬구(浮雲)에 비유하기도 하고 모래 위에 남겨진 발자국처럼 만조가 되면 없어지는 것을, 백년도 못 사는 게 인생이요. 인생을 나그네에 비유하기도 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후회 없는 마무리가 되도록 설계하고 실천에 옮기며 제2의 인생을 설계해 보자.”

본보(2017년 2월17일자 8면)에 기고한 필자의 글을 옮겨 적으니 최근의 장관급 임명권자나 대상자나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인생길에 잘못된 선택이 없으시길 바란다. 글을 쓰다 보니 고등고시 8회에 합격하시어 법무부장관을 지내신 평소에도 존경해오든 청주고등학교 선배님이신 김석휘씨가 떠오른다. 지금까지 모교는 물론 어디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으셨지만 한때는 국무총리로 거명되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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