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학 진천군청 전 회계정보과장

 

[기고] 정종학 진천군청 전 회계정보과장

뜨거운 태양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철의 무더위는 자연의 순리다. 더울수록 잘 자라는 식물은 서로 경쟁하며 좋은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숲과 계곡은 포근한 안식처로 사람을 비롯한 동물을 안정시키고 있다. 사람은 더위를 좋아하는 식물의 도움 없이는 일상 활동이 어렵다. 왜냐하면 숲은 그늘과 바람뿐만 아니라 피톤치드 소독제를 뿜어내 질병을 치유해주기 때문이다.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계곡은 여름철 쾌적한 휴식처로 각광받고 있다.

올 여름도 예년 못지않게 몹시 덥다. 자연이 내 속마음을 눈치 챈 듯 삼척 덕풍계곡과 설악산 십이선녀탕 단짝이 어르신의 허락을 받고 마중 나와 있다. 두 계곡은 언뜻 보면 산에 달려 있다기보다는 계곡에 산이 딸린 느낌이 든다. 그들의 미소에 이끌려 협곡에 오니까 에메랄드빛 계곡 물이 눈에 밟힌다. 반질한 너럭바위 위를 감싸며 재잘거리고 있다. 새하얗게 뿜어내는 음이온을 듬뿍 받으니 온갖 세파에 멍든 가슴이 치료되는 듯하다.

그 계곡물은 신비롭게도 밤색 빛깔을 내고 있다. 어찌 보면 덜 끓인 보리차처럼 노랗다가 콜라처럼 보이는데 그 비밀은 바로 붉은 금강송과 참나무로 여겨진다. 낙엽으로 이뤄진 표피층에 보존돼 있다 우러나온 듯하다. 덕풍계곡 최고의 백미는 빙하침식으로 생겼다는 세 개의 용소폭포다. 높다란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평평하고 넓은 계곡 끝에 있다. 힘차게 내리는 폭포의 물줄기를 보니 답답한 마음이 절로 풀리며 기분이 상쾌해진다.

바로 이 맛에 계곡산행을 즐기며 물놀이를 하는 이유다. 더 많은 계곡을 품고 있는 설악산의 수려한 십이선녀탕으로 이동한다. 폭포와 탕의 연속으로 구슬 같은 물이 갖은 변화와 기교를 부리면서 흐르고 있다. 열두 탕의 모양은 장구한 세월의 하상작용에 의해 오목하거나 반석이 넓고 깊은 구멍을 형성하는 등 기묘한 형상을 이루고 있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설악산을 지켜온 나무들 중에는 신기한 형태를 만들어 특유한 이름표를 달고 상견례를 한다.

그 무엇보다 오랜 세월이 만들어낸 자연에 멋진 작품의 생명력에서 교훈을 얻는다. 속빈나무, 이리저리 제멋대로 굽은 나무, 혹부리나무, 속이 썩어도 살아가는 주목나무, 등을 보며 인간의 굴곡진 인고를 대면하는 듯하다. 경이로운 계곡에서 맑은 물만 봐도 마음이 청량해진다. 바위 틈새로 옥수가 흘러 담을 이루고 있으니 더 없이 시원한 느낌이 든다. 복숭아탕에 있는 비취색의 옥수는 마치 축성(祝聖)한 성수처럼 느껴진다.

그 험난한 산봉우리를 오를 때까지 온갖 잡소리가 다 들려왔다. 이웃 나라와 다투는 함성과 간지러운 질투와 시샘에 머리가 한참 어지러웠다. 이런 와중에 이름 모를 산새들이 등정을 환호하며 부르는 선율에 압도되며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진다. 아름다운 계곡은 금물결위에 종이배를 띄워 사랑의 종착역에서 행복한 삶을 부추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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