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연 청주시 흥덕구 건설과 주무관

 

[기고] 김호연 청주시 흥덕구 건설과 주무관

충남 공주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원래의 목적은 100년도 더 전에 지어진 중동성당의 고풍스러운 모습과 공주 시장(市場)을 구경하는 것이었는데, 우연히 들어서게 된 성당 옆 골목길에서 예쁜 건물들을 발견했다. 대부분이 오래되고 군데군데 금이 간 빨간 벽돌의 집이었으나 약간의 조명기구를 설치하고 페인트를 덧칠해 세련된 가게로 탈바꿈했다. 건물 자체에는 거의 손대지 않으면서도 새로 지은 것 같은 느낌이 났다

공주 시내 곳곳에는 옛 건물을 보존하면서 현대적인 느낌의 인테리어를 결합한 이런 건물들이 많이 있다. 골목길을 걷다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들어간 한 음식점은 아버지가 하시던 오래된 여관을 아들이 물려받아 1층은 식당으로, 2?3층은 거주시설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곳 역시 기존의 건물은 최대한 그대로 두면서 팻말과 액자 등을 활용해 아늑하면서도 젊은 느낌을 살렸다

공주 옛 시가지를 흐르는 제민천 오른 편에는 공주시가 운영하는 '공주 하숙 마을'이 있다. 공주를 찾은 사람들이 며칠간 머물며 1970년대의 하숙 문화를 체험하고 공산성과 석장리 박물관, 한옥마을 등 공주의 관광명소를 둘러보기 좋은 자리에 위치해 있다. 재미있는 점은 원래 하숙 마을 자리에 있던 낡은 건물을 철거하면서 그 건물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동네 어르신들을 위해 담벼락의 일부를 유리관에 넣어 보존해줬다는 점이다.

사업을 시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낡은 건물은 전부 철거하고 새로 짓는 것이 훨씬 손쉽고 편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자 했던 한 번의 노력으로 인해 옛날의 담장과 대문은 오랫동안 주민들 곁에 남을 수 있었다. 그들이 지킨 것은 비단 벽돌 몇 장, 시멘트 몇 블록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상호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믿음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논리와 의견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간다. 작은 문제일지라도 의견 충돌이 빈번히 일어나기 마련이다. 대립이 장기화될수록 시야가 좁아지고, 스스로의 생각에 고착된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 더 나은 방향을 찾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 이때 내가 가진 생각에서 한 걸음만 뒤로 물러나 보자. 나의 의견만큼 타당한 타인의 입장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다른 사람이 제시하는 좋은 대안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고 내 고집대로 진행했다가 일을 그르친 적이 여러 번 있다. 아마도 평생 동안 만들어왔을 이 습관을 고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경청에 대한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경청은 단순히 상대의 말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내용은 물론이며, 그 내면에 깔려있는 동기와 정서에 귀를 기울여 듣고 이해된 바를 상대방에게 피드백(feedback) 해 주는 것을 말한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려는 이 한 번의 노력이 우리 모두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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