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청주대 겸임교수·로컬콘텐츠 큐레이터

 

[충청의 창] 변광섭 청주대 겸임교수·로컬콘텐츠 큐레이터
 

오래된 마을은 발길 닿는 곳마다, 눈에 들어오는 곳마다 역사요 문화다. 빛바랜 돌담은 문화를 간직한 돌이요 신화와 전설을 간직한 돌이며 옛 사람들의 상처깊은 풍경을 담고 있는 돌이다. 나무 한 그루, 폐허가 된 집 한 채, 마을의 빨래터와 경로당과 정미소 등 그 어느 것 하나 정겹지 않은 게 없다. 저마다의 애틋한 사연과 쓰라린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소재지 마을은 더욱 그렇다. 40여 년 전 대청댐이 건설되면서 수많은 마을이 물속으로 잠겼다. 조상 대대로 수백 년을 살아왔을 마을이 수몰되자 사람들은 도시로, 이웃마을로 짐을 싸야 했다. 이 마을은 수몰지역의 주민들이 이전하면서 조성되었다. 100여 가구가 새 터전을 마련했다.

그래서일까. 이 마을은 농촌과 도시가 공존하는 듯하다. 아담하고 단정한 맛에 문명의 내음이 끼쳐온다. 앞에는 대청호가, 뒤에는 양성산이 위치해 있는데다 청주, 대전, 세종의 길목이기 때문에 오가는 사람들로 소요스럽다. 대통령 별장이었던 청남대가 국민관광지로 인기를 얻고 있고, 수몰지역의 문화재를 주섬주섬 모아 놓은 문화재단지가 있어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마을에 숨겨진 보석이 여럿 있다. 신화와 전설, 상처깊은 풍경, 그리고 자연예술이 그것이다. 조선시대의 문의는 현청이 있던 고을이다. 그래서 지금도 객사(客舍)인 문산관이 보존돼 있다. 두루봉동굴에서는 구석기시대의 인류화석이 발굴되었다. 발굴팀은 그 이름을 흥수아이라고 명명했다. 아홉의 용이 살았다는 구룡리는 지금도 용의 전설이 담긴 동굴이 있다. 테뫼식 산성인 양성산성은 그 쓰라린 역사를 보듬고 있다.

이 마을은 여행자들이 어슬렁거리기에 아주 좋은 환경을 갖고 있다. 햇살 눈부신 대청호변을 걸어도 좋고 양성산으로 올라가 숲을 비밀을 찾고 자연의 신비를 엿봐도 좋다. 산 정상에 오르면 대청호의 푸른 기운과 마을의 아름다움이 한 눈에 펼쳐진다. 골목길마다 돌담이 어여쁘다. 까치발만 뜨면 붉은 대추와 홍시가 반긴다. 방앗간이 있고 오일장이 있으며 청정환경에서 자란 농산물로 가득하다.

이 마을은 예술인들의 보금자리다. 도예가, 화가, 서예가, 건축가, 음악인 등 20여 명이 둥지를 틀고 있다. 저마다 창작의 꽃을 피우고 있다. 예술인들에게는 자신이 머무르는 환경이 중요하다. 본대로 쓰고 그리고 담고 노래하기 때문이다. 역사와 자연과 삶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기 때문이다. 개성 넘치는 커피숍과 공방, 그리고 힐링을 테마로 한 공간이 여럿 있다. 여행자에게는 앙가슴 뛰는 최적의 마을이다.

최고의 예술은 자연이다. 인간이 하는 모든 예술의 행위는 자연을 닮아가는 행위다. 그래서 화가 피카소는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라고 한 것이다. 어린이의 마음처럼 거짓 없고 깨끗한 영혼을 담는 것이 예술이다. 모든 예술인은 자연 속에서 영감을 얻고 예술의 길을 찾는다. 직지의 도시, 교육의 도시 청주의 유일한 한지가 이곳에서 생산되고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자연학교도 운영되고 있다. 자연이 곧 학교이고 예술이다.

그러니 이곳은 자연예술의 보고(寶庫)가 되면 좋겠다. 지붕없는 미술관 말이다. 이곳에서 마음껏 희망하고 예술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힘을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시민들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보석은 깎고 다듬으며 귀하게 사용할 때 빛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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