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수요단상] 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요즘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목소리가 커야 한다고 말한다. 마치 어린 새가 어미 새에게 먹이를 달라고 조르듯 목을 길게 빼고 목청껏 큰 소리를 내야 사람들이 주목하고 또 자신의 원하는 바를 들어준다고 말이다.

여기서 목소리는 말 그대로 큰 소리를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물론 소리가 크면 그만큼 주의를 끌기 쉽겠지만 큰 목소리라는 것은 때론 물질이 될 수도 있고 때론 권력이 될 수도 있다. 남들보다 돈이 많다면, 남들보다 권력이 많다면 그만큼 자신이 원하는 바를 더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그냥 허튼 말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단지 자신의 바라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만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더 크고 높은 꿈을 억지로 꾸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예수는 이와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목소리를 크게 하고 경쟁에서 남을 이겨야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낮은 자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눅 6:20-21)

가난은 힘이 아니다. 주림은 권력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가난과 배고픔 때문에 그저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초라한 인생일 뿐이다. 그런데 예수는 그와 같은 인생에 복이 있다고 선포한다.

무슨 복인가? 하나님 나라의 풍요를 얻을 것이요 배부름을 얻을 것이요 슬픔이 사라지고 기쁨이 충만한 삶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잠언 4장 23절은 그 해답의 실마리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예수는 사람의 생명이 부요함이나 높은 권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세상에 마음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물질과 권력에 모든 삶의 중심을 빼앗긴 인생이 바로 마음을 잃어버린 인생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 해도 생명을 잃어버린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 부자가 농사를 지었는데 예년 보다 배나 더 많은 곡식을 얻었다. 부자는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말랐는데 생각해보니 자신의 창고는 이 곡식을 다 저장하기에는 너무 작았다. 부자는 즉시 오래된 창고를 부스고 더 크고 튼튼한 새로운 창고를 지었다. 창고가 완성된 날, 이 창고를 곡식들로 가득 채울 생각을 하니 너무 기뻐서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았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그날 밤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 그에게 말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눅 12:20)

많이 가져서 복된 인생이 아니라 생명을 지켜서 복된 인생인 것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육신적으로는 가난에 처할 수도 있고 배고픔에 처할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도 결코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사랑과 온유와 겸손과 자비의 마음을 늘 품고 있다면 그 인생은 자신이 가진 것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지켜낸 진정한 인간다운 마음을 통해서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행복을 꿈꾸며 살아가면서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가? 행여나 눈에 보이는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마음을 대가로 지불하며 물질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와 정반대로 마음을 지키기 위해 눈에 보이는 가치들을 포기할 때 오히려 참된 기쁨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인생의 행복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음을 반드시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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