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시평] 정현숙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청백리(淸白吏)라는 호칭이 있다. 청백한 관리를 일컫는 말이다. ‘청’은 사념이나 탐욕이 없는 맑음을, ‘백’은 깨끗하고 순수함을 뜻한다. 청백리는 관직 수행 능력이 출중하면서 동시에 청렴하면서 근검하고, 도덕과 경효 그리고 인의 등의 덕목을 겸비한 조선시대의 이상적 관료상이다.

고려시대부터 청백리가 존재했다. 최영 장군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부친의 가르침을 어김없이 실천하여 그의 청백함이 칭송되었고, 자식들에게 청백한 관리가 되어 가문의 전통을 이으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제도적으로 실행된 것은 조선시대부터다. 의정부에서 청백리를 뽑았는데, 의정부와 육조의 2품 이상 당상관과 사헌부, 사간원의 수장이 천거하고 임금이 재가하는 과정을 거쳐서 결정되었다.

조선에서는 총 218명의 청백리가 배출되었다. 조선 전기의 맹사성, 황희, 최만리, 이현보, 중기의 이황, 김장생, 유성룡, 이원익, 이항복 등은 우리에게 청렴의 상징인 유능한 관리들이다. 청백리가 되면 후손들에게 선조의 음덕을 입어 벼슬길에 나갈 수 있는 특전이 주워졌다. 청빈한 부모 덕분에 후손들은 가난을 면하고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에는 어떠한가. 색깔과 이념 논리에만 빠져있는 사회 지도층, 일신의 안녕과 내 자식의 장래만 생각하는 이기심 가득한 기득권, 민중을 금수 보듯 하는 상류층 사람들. 그들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의 의미를 되짚어 본 적이 있을까. ‘자기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한 후, 가정을 돌보고, 그 후에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다’는 옛 말을 새기고 실천하는 고위 공직자가 있기는 한가.

국민이 원하는 것은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원한다. 공평하게 교육 받을 권리를 가지고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공명정대한 사회를 원한다. 그런데 기득권자들로 인해 생긴 지금의 상황으로 인해 청년들은 상대적 박탈감, 절망감, 배신감, 자괴감에 삶의 의욕마저 상실했다. 결국 민초들의 바람은 일장춘몽이라는 허무감만 들게 했다.

지금 우리나라에 청백리로 불릴 만큼 존경받은 사회 지도자가 있는가. 그것이 임명직이든 선출직이든 고위직 공무원에 대해서는 능력에 더하여 국민의 정서에 맞는 도덕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그 잣대에 맞는 사람만이 사회적 영향력을 지닐 수 있고 그래야 그가 하는 일도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어떤 정책도 성공을 거둘 수 없다.

지금 강대국 사이에 낀 나라 밖 사정이 급박하여 모두 합심해도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런 시기에 나라 안에서는 어찌하여 반칙과 특권을 일삼은 기득권자들이 저지른 개탄스러운 상황에 왜 국민들이 편을 갈라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지 답답할 뿐이다. 진정 언행이 일치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이 시대의 청백리는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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