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질주했다. 단거리 선수 마냥 내달리다보니 심장은 터질 것만 같고 근육은 찢어지듯 통증이 느껴졌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멈춘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백기를 드는것만 같아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몸이 제 스스로 주저앉았다. 아니 균형을 잃은 자동차처럼 장애물을 향해 돌진했다. 온 몸이 부서지고 상처투성이가 되고서야 비로소 멈추었다. 그렇게 폭주했던 문장의 쉼표를 찍었다.

가정에서 아내가 되고 어머니로 산다는 것은 한없는 기다림이다. 망부석이 될 때쯤에야 쉼표를 찾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방학숙제 계획표처럼 짜여진 인생의 그래프를 지우고 다시 그리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내려놓을 줄 알게 되었다. 가족들이 온전히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개체인 한사람의 성장이 된다.

떠나보낼 줄 아는 성숙함은 언제든지 돌아와 따뜻한 추억을 공유할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좀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으며 행복한 시간만이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밤과 낮이 조화롭게 이루어졌듯이 인생 또한 그러함을 알고 있다.

인생의 절반은 일터에서 보냈다. 수많은 동료들을 만나고 이별을 하며 그들과의 추억을 쌓아갔다. 채 서른도 되지 않았을 적에 만났던 지금의 내 나이 정도의 동료들은 어느새 모두 떠나고 새로운 이들과 함께한다. 서로 다른 형편과 성장과정을 거쳐 일정부분 공동체 생활을 한다. 나의 뜻과 다르다 하여 그가 틀린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내 위치에서 둘러보고 판단하며 그들을 대했다. 그러다보니 알게 모르게 상처도 주었을 테고 나 또한 얼먹은 과일처럼 가슴이 거뭇해졌다.

가끔은 생각지도 못했던 이와 깊은 동료애를 나누며 지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서로 이익을 목적으로 만났더라도 그 이상을 나누게 된다. 어쩔 수 없이 해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대하면 능률도 오른다. 일터의 질이 달라진다. 그럼에도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쉼표가 필요 할 때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불혹을 넘기고 수필반을 만났을 적의 마음이 그랬다. 가끔은 자아도취에 빠지기도 했으며 절망하고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했다. 자리를 쉽게 비울 수 없는 형편 때문에 세상을 바라볼 여유를 갖지 못했다. 그런 상황이 답답했다. 가슴에 담고 있던 것들을 끄집어내어 쓰다 보니 고갈되어 더 이상 물이 올라오지 않는다. 마중물을 넣어도 좀처럼 소식이 없다. 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글을 쓰는 나를 위해 새로운 것들을 담아 보기로 했다. 다시 읽고 보고 느끼는 삶을 찾으려 한다.

멈추어선 그대로 내면을 더듬어 본다. 젊은 시절은 현모양처賢母良妻가 되고자 했지만 그러기엔 너무나 이기적이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을 꿈으로 삼고저 한다. 남편과 아이들을 통한 대리만족과 나의 일신의 꿈이 자리다툼을 한다. 그럼에도 그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으며 쉽사리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생각하는 것도 잠시 쉼표를 찍자. 달콤하게 흐르던 시간이 지나고 무기력해졌지만 이 또한 지나가야 할 길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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