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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그리고 어린 날의 추억박기태 건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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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15  15: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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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아침에] 박기태 건양대 교수

여름의 끝자락에 바로 이어지는 올 해의 추석은 흔히들 이른 추석이라고 한다. 추석명절이 되면 우리들 저마다 돌아갈 고향생각과 가족을 비롯한 친지들을 만날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들떠 있곤 한다. 그래서 고향은 단순히 어디 어느 곳이라는 지명으로서의 고향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향이 있다는 것은 행복하다. 고향을 등지고 떠도는 사람들에게는 고향이란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일 뿐만 아니라 따뜻한 품안이기 때문이다. 또한 바빌론 유수이후 디아스포라(Diaspora)처럼, 우리가 그리워하는 고향은 언젠가 우리들이 돌아가야 할 대지의 품 안이고 살아서 깃드는 마음의 안식처가 됨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일들이 머리를 스친다. 청빈한 공무원의 외길을 고집하셨던 아버지와 전업 주부이셨던 어머니는 꽃을 무척 좋아하셨다. 아버지의 직장관계로 이사가 잦았던 우리 가족은 이 고장에서 저 고장으로 늘 이사하기에 바쁜 까닭에 우리 가족은 한 곳에 오래 정착하지 못함을 못내 아쉬워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또 이사 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린 우리들을 위해 꽃밭을 만들어 주시면서 우리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자라도록 은연중에 가르쳐 주셨다.

아버지는 청년시절부터 프랑스 문학과 바이올린 켜는 일을 유난히 즐기셨던 생각이 난다. 아무리 바빠도 우리에게 책 사주시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으셨다. 친구들이 부러워 할 만큼의 많은 책들이 책꽂이에 널려 있었으며, 그 시절에 책을 많이 읽었던 덕택에 나는 또 잠 못이루며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아버지의 간드러진 바이올린 은율에 맞춰 참새처럼 조잘거리며 미국 서부의 민요 ‘클레멘타인’을 불러대던 일들은 지금도 아련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랐던 그 시절이 바로 나의 황금시절이 아니었던가! 깊은 생각에 젖어든다.

똑같은 건물과 건물들이 늘어선 미로 같은 길들 사이에서 서성이고 이웃과의 따뜻한 정감은 나눌 수도 없는 회색빛 도시에서 노스텔자(nostalgia)를 느끼면서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립고 아련한 어린 시절의 고향에 대한 추억들을 소중하게 각인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래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종종 덧칠해 보기도 한다. 사실 우리는 고향에서의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기에 가슴 저리도록 추억을 하면서 산다. 따라서 이 세상에 추억이 없는 사람처럼 불행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제는 추억거리가 되어버려 시멘트벽에 휩싸인 도시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어린 시절의 소중한 체험들.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의 파편들이 아무리 손짓을 해도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것들이 하나하나 살아나서 내 생의 물금을 긋듯, 나의 일상에서 소중한 체험생활로라도 되살리고 싶다.

지금은 곁에 없는 아버지와 어머니! 다시 한 번 그 이름을 불러본다. ‘부모’라는 단어 하나로도 고향을 그리워하듯 전신이 떨려온다. 그리고 나는 영혼앓이를 한다. 나지막한 슬픔이 목까지 꽉 차오른다. 머리 숙여 다시 한 번 불러본다. 그리고 올려다보면 유난히 파아란 하늘이 거기에 있듯이 고향 한 언저리에는 언제나 아버지와 어머니가 늘 푸르게 살아계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분들께 말하고 싶다. 고독한 풀처럼 이 세상을 꼿꼿하게 살겠노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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