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충청시평] 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아침저녁으로 삽상한 바람이 분다. 진천에서 청주로 나가는 길이다. 퇴근 시간을 피한다는 것이 딱 맞물리고 말았다. 자동차가 대로를 가득 메우고 엉금거리고 있다. 열나절 가게 생겼다. 길 요량을 잘 알고 있는 문우는 옆길로 샌다. 좁고 구불구불한 농로다. 자동차가 빨리 달릴 수 없어서 평소 많이 이용하지 않는 곳이 오늘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 씽씽 달릴 수 있는 없지만 정체가 되지 않으니 조바심 칠 필요도 없다. 양 옆으로 통통하게 여문 나락이 누른 물결을 이루며 일렁이고 있다. 여유로운 마음이 된다.

쭉쭉 벋은 새 길이 생기기 이전에 자동차가 통행하던 옛길로 접어들었다. 버짐나무 가로수가 어릴 적 미루나무 신작로의 정취를 잇고 있다. 중간 중간 수줍게 핀 코스모스가 초등학교 시절로 손을 잡아끈다. 1970년, 당시에는 길가에 코스모스를 우리 손으로 심고 가꿨다. 그 꽃길을 친구들과 놀면서 가다가도 버스가 지나가면 조르르 멈춰 서서 손을 흔들었다. 그리하도록 교육을 받았다. 흙먼지 뽀얗게 일으키며 지나가는 버스가 어찌 곱게 보이겠는가. 그래도 차 안에서 손을 마주 흔들어주는 이가 있으면 그것으로 흐뭇했다.

여름방학이 끝나자마자 추석 다음날 있을 운동회를 위해 총연습에 들어갔다. 그중 하이라이트가 되는 고전무용이 제일 힘들었다. 순서와 리듬을 제대로 익혀야 한다. 함께 하는 동작에 한둘이라도 틀리면 전체작품이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운동회 연습으로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갈 때면 위로가 되고 숨바꼭질 놀이 상대가 되기도 했던 코스모스다. 그래서 더 정겹고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코스모스는 내 유년이 머물러 있다.

돌아보면 물질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던 그 시절은 추억거리로 풍요로웠다. 코스모스길 가꾸기와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일은 조기청소다. ‘애향단’이란 이름으로 한 우리들의 활동이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희붐한 어둠속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 허름한 초가에 슬레이트 지붕 얹고/ 마을길 넓히며 꿈을 열어 본다//이른 아침, 댑싸리 빗자루 들고/ 온 동네아이들 왁자글 거리청소 나서면/기름집, 솜틀집, 만물잡화상/ 궁핍해 보이는 상가 거리도 활기를 띤다//돌아보는 이웃집 아제 흐뭇한 웃음 머금고/ 쓰삭쓰삭 싸리비 끝에 쓸려나가는 가난의 조각/ 어설픈 비질을 통해 아이들은 제 앞길을 닦고/ 훤해지는 거리는 그들이 살아갈, 미래의 예고였다.//

희뿜한 새벽이다. 새마을 노랫소리를 들으며 아이들이 졸린 눈을 비비며 거리로 나섰다. 제 키만 한 싸리비를 들고 거리청소를 한다. 어린 나이에 애향단이란 의미야 어찌 알았겠는가. 그래도 그 일을 한 세대이기 때문에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요즘 아이들에게 고향의 의미가 크게 와 닿을 것 같지는 않다. 고향에서의 추억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이들도, 어른들도 하지 않는 일이다. 동네 가꾸는 일도 돈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하는 일은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오랜만에 만난 코스모스 길에서 문득 추억 한 조각을 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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