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에서 32년째 살고 있는 내가 처음 경험할 정도로 사태는 심각하다. 발단은 지난 7월 4일 일본이 취한 수출규제였다. 불화수소 등 한국에 대해 세 가지 품목의 수출우대조치를 정지한 것이다. 자국의 안전보장상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마침내 8월 28일에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우대대상국가)'에서 제외시키는 상황이 벌여졌다. 대부분의 수출규제 품목이 한국의 주요산업, 특히 자동차나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것들이라 그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이에 맞서 한국도 일본을 수출우대국가에서 제외하고 범국민적 차원에서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세간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일 경제전쟁'이라 부른다. '전쟁'이라니 그 얼마나 끔찍하고 섬뜩한 말인가. 역사인식이나 영토분쟁 때문에 늘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지만 그래도 동아시아 자유진영의 동맹국으로서 최소한의 공조를 유지해온 두 나라였다. 극도의 대립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제는 경제를 넘어 정치,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양국 간 교류에 제동이 걸렸다.

급기야 한국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를 선언하는 데까지 이르자 일본의 일각에서 한국과 단교(斷交)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불과 몇 달 만에 벌어진 일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작년 후반부터 이와 관련된 징조가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양국 정부가 합의했던 종군위안부재단의 해산, 한국 해군함정과 일본 자위대 초계기의 접촉 등 양국 간에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일들이 연이어 터졌다. 특히 작년 10월 한국의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공들에 대한 배상 판결을 내리자 일본은 이에 격분했다.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 체결로 일제 강점기에 대한 한국의 모든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것이 일본의 일관된 주장이다. 일본은 지금 국내외의 사정이 매우 복잡하다. 외적으로는 미중무역 마찰이 경제를 위협하고 있고 북핵문제, 이란문제 등 큼직한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내적으로도 저출산 고령화, 후쿠시마 원전 수습, 도쿄올림픽 개최 등, 국력을 총동원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수두룩하다. 아베정권은 이러한 상황에서 헌법 9조를 개정해 일본이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보통국가'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고 있지만 이에 반대하는 세력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한편, 한국도 상황이 여의치 않기는 매한가지다. 촛불혁명으로 극적인 정권교체에 성공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강하게 개혁의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러나 야심차게 꺼내놓은 경제정책들은 2년이 넘도록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 하고 있어 보수 세력들의 공격대상이 되고 있다. 여전히 불투명한 북핵문제 또한 큰 부담이다.정반대의 이념, 그러면서 똑같이 강한 추진력을 지닌 지도자가 지금 두 나라 권력의 정점에 서있다.

"애국심은 국가의 이기심이다." (라인홀드 니버)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국가보다 더 큰 가치를 찾기란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애국심이 무방비로 정치에 이용당해서는 안 된다. 이해, 배려, 신의, 우정…, 아직도 한·일 간에는 이대로 포기하기에 너무나도 귀한 것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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