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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德)을 짓밟지 마라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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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24  13:3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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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현대인은 덕(德)을 변명의 구실로 이용하려고 덤빈다. 무슨 일을 잘못 저질러 놓고 책임을 물으면 부덕(不德)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시치미를 떼려는 사람들이 흔하다. 주로 지체가 높은 사람의 입에서 그러한 변명이 나올 때 더더욱 덕이 상처를 입고 모멸을 당한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행패를 부리는 마음은 곧지 못한 법이다. 마음이 곧으면 행패를 부릴 필요가 없다. 부끄러움이 많은 마음일수록 무엇인가 감추고 숨기려고 꾀를 부리고 티를 잡아 무슨 핑계를 대려고 용을 쓴다. 이러한 마음은 순수할 수가 없다. 강한 척 허세를 부리고 위세를 부리는 마음은 광포한 마음으로 돌변하고야 만다. 뒤가 구려서 광포한 마음은 정직한마음이 무서워 위장을 하는 것이다. 정직한 마음은 덕(德)에 기대지 덕을 멀리하지 않는다.

못난 목수가 연장 탓을 하는 법이다. 제 자신의 능력을 모르고 잘못을 남에게 돌려 자신의 무능함을 감추려는 경우 이러한 말을 듣는다. 무식한 사람은 제 분수를 모르는 사람이다. 지식이 많아도 무식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머릿속에 든 것이 많다고 유식한 것은 아니다. 머릿속의 지식을 알맞게 활용하는 능력이 없으면 그 또한 무식한 것이다. 연장 탓을 일삼는 목수에게 무슨 성실성을 바랄 수 있을 것인가. 마음이 성실한 사람은 사리를 알아 처신하다. 무작정 열심히 일한다고 성실한 것은 아니다. 소매치기가 소매치기를 매번 성공하려고 기술을 열심히 연마 한다고 해서 성실한 인간은 아니다. 선(善)을 위해서 땀을 흘리는 사람의 마음이 성실한 것이다. 성실이란 성(誠)의 실천을 말한다.

성(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곧 덕을 위해 충성하는 마음이다. 앞뒤가 꽉 막혀 선후를 분간 못하고 할 짓 못할 짓을 가리지 못하는 무모한 인간은 무식한 무례 한이다. 무식하면 무례하기 마련이다. 무례한 마음은 덕을 떡처럼 집어 삼키고 시치미를 떼면서 딴전을 피우며 덕을 짓밟아 버린다. 무식하고 무능하면 신용을 얻지 못한다. 외상으로 물건을 갖고 갔으면 약속한 날에 돈을 갚아야 신용을 얻는 것이 일상의 생활이다.

어디 물건을 사고파는 데만 신용이 있어야 하는가. 아니다. 서로 더불어 사는 인간의 사회에서는 언약을 믿고 서로 의지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이미 독불장군은 없다. 약속을 가을날 떨어지는 낙엽만큼 여기저기 해놓고 하나도 지키지 못하면 허풍쟁이가 된다. 아무도 허풍쟁이는 믿어주지 않는다.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것보다 더 무능한 것은 없다. 무능함이란 사람을 속여서 덕(德)을 짓밟는 죄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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