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혜영 서원대 교수
얼마 전 대만에 갔을 때, 타이페이 국립고궁박물원에 다녀오느라 버스를 타게 되었다. 갈 때 올 때 두 번뿐이었지만 그때 만난 사람들이 내게는 마치 모든 대만 사람들의 모습처럼 남아있다.

숙소에서 좀 떨어진 버스정류소에서 304번 박물관행 버스에 올라탔다. 요금은 30대만달러, 우리 돈으로 약 1200원 조금 넘는다. 버스에 오르니 우리나라 버스요금통과 거의 흡사한 요금 통이 있었다. 그때 나에게 50 대만달러짜리 동전이 있었는데 요금 통 아래에 동전 구멍 같은 것도 보여서 잔돈을 내주겠지 생각하고 동전을 기사님 앞에 내어보여주고 통에 넣었다. 하지만 머뭇거리는 내게 기사님은 동전을 거슬러 줄 생각은 않고 짐표 같은 표를 하나 주신다. 그래도 계속 서있으니까 표가 더 필요한 줄 알고 하나 더 주신다. 아마 갈아탈 때 내는 환승표가 아닌가 싶다. 그제야 그 요금통은 따로 잔돈을 내주지 않는 것을 알아차렸다. 우리 돈 800원이 대단한 액수는 아니지만 거스름돈을 못 돌려받은 것을 내심 서운해 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때 운전석 바로 뒤에 앉은 여자 승객이 내 행동을 쭉 지켜보았는지 마치 자기가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하며 그곳 버스는 잔돈을 내주지 않는다고 하였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잔돈 생각은 잊고 버스 앞쪽 전광판을 들여다보며 정거장 이름들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에 나에게 말을 건 여자와 바로 뒤에 앉은 여자가 기사에게 뭐라고 말하더니 50달러짜리 동전을 받아가지고는 건너편에 앉은 여자 승객에게서 10달러짜리 잔돈으로 바꾼 다음 나에게 20달러를 주고 기사님께 나머지 돈을 돌려주는 것이 아닌가. 옆의 승객들이 협력(!)해서 마련해준 잊고 있던 거스름돈을 건네받으며, 한편으로는 본의 아니게 여러 사람 번거롭게 한 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대처가 서툰 외국인을 배려해주려는 그들의 관심이 놀랍고 고마웠고, 우리네 바쁜 도시에서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그 여유가 그리웠다. 나보다 먼저 내리면서 뒤를 돌아보며 잊지 않고 내게 건네준 그들의 따뜻한 눈인사가 떠오른다.

박물관에서 돌아올 때 다시 버스를 타게 되었다. 박물관 가는 것에만 신경쓰다보니 돌아갈 때 내릴 정류소를 확인해두지 않아 버스를 기다리며 곁에 있는 아저씨께 지도 위의 숙소 위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어느 정류소인지 물었다. 그는 설명을 하다가 아무래도 말로 알려주기는 어려운지 기사님께 묻는 게 낫겠다고 한다. 막상 버스가 오니 자기가 직접 버스에 올라 기사님께 나를 어느 정류소에서 꼭 내려주라고 설명해주고는 내가 고맙다는 인사를 채 하기도 전에 버스에서 도로 내려버린다.

한참을 갔을까 기사님이 딱히 나를 보지도 않고 뭐라고 말을 하시자 앉아있던 사람들이 나에게 이번에 내리라고 손짓으로 전달해준다.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버스에서 내린 다음 버스 뒤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하자 기사님이 다시 나를 부르며 버스 바로 앞 건널목으로 건너라고 버스를 멈추고 기다리신다. 내가 못 들으니까 창가에 앉아있던 할아버지도 덩달아 손으로 차창을 두드리며 내가 돌아보도록 시선을 끌어 손가락으로 앞으로 건너가라고 알려주신다. 타지 사람이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눈길을 떼지않고 지켜보시던 무뚝뚝한 할아버지의 창문 두드리는 소리가 왠지 정겹다.

단 두 번 버스 안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 나라 전체 모습으로 비치는 것처럼, 내가 만난 외국인에게는 나 한 사람을 통해 우리나라가 기억되겠구나 생각하니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실린 무게가 새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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