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백목련] 육정숙 수필가

산산하니 좋다. 귓불을 스치는 바람이 발걸음까지 가볍게 한다. 고개를 들어 바라 본 하늘은 구름한 점 없이 푸르다. 참 오랜만에 보는 투명한 하늘빛이다. 늘 이맘때면 오라는 곳도 없는데 어디든 달려가고 싶다. 길가는 아무나 붙잡고 수다라도 떨고 싶어진다. 이렇게 가을이 오면,

하던 일 멈추고 한달음에 달려 간곳은 갈대가 하얗게 세월을 밟은 대청호! 숲길로 접어들자 풀 향기가 반긴다. 익숙한 장소가 아닌데 익숙하다. 어느 곳을 보아도 마음이 편해진다. 마치 어릴 때 뛰어 놀던 고샅 같다. 눈을 감고 가만히 바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바람이 휘리릭 심술을 떤다. 알밤이 숲을 때린다. 참나무가 까르륵 웃는다. 발아래 낮은 풀들이 앙증맞은 미소를 던진다. 숲에 취해 시간을 잃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녀 간 흔적이 보였다.

20L 정도 되는 하얀 비닐봉투가 두 뭉치나 된다. 대략 짐작으로 먹고 마시고 버린 쓰레기다. 큰길에선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풀숲이라 던져 놓은 것 같다. 묶여있는 부분으로 삐져나온 나무젓가락, 찢어진 일회용 접시, 파르스름한 소주병도 아른 거린다.

얼마 전, 매스컴을 통해 알고 있었던 일인데, 그 순간 언뜻 떠올랐다. 껌으로 만든 운동화였다. ‘암스테르담은 매년 약 1500톤의 껌이 바닥에 버려지는데, 이들을 청소하기 위해서 수백만 달러의 비용이 들고, 또한 길거리에 버려 진 껌으로 인한 환경문제가 심각한 만큼, 이를 재활용한 운동화의 출시는 좋은 해답이 될 것이다.‘ 라는 기사내용이다. 그 팀원 중 한명이 껌이 합성고무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발견하고 연구 하던 중 새로운 타입의 고무를 생성해서 운동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어디서든 모임이나 행사를 마치고 난 자리를 돌아보면 쓰레기더미가 된다. 바다생선의 뱃속에서 나오는 플라스틱 조각들이며 비닐뭉치, 거북이의 코에 박혀있던 빨대 등등 뉴스를 접할 때면 할 말을 잃는다.

아파트마다 쓰레기 수거 장에 하루가 멀다 하고 가득가득 쌓이는 쓰레기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가! 돌이켜보면 결국엔 우리가 먹고 마시고 또 다시 버리는 일로 되풀이 되는 것이다. 요즘 유연제에 미세플라스틱 문제도 대두 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물을 사먹고 있다. 물을 사먹어야 할 때가 올 거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설마하니 믿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물이 오염되고 땅이 오염되고 바다가 오염되고 있다. 앞으로 마음 놓고 우리가 무엇을 먹고 마셔야 할까!

나뭇잎사이로 맑은 바람이 지나간다. 긴 호흡으로 폐부 깊숙이 스며든 세상의 분진들을 헹구어내고 있다. 버려 진 하얀 비닐봉투 두 뭉치를 선물처럼 차에 실었다.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가져다가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이다. 길가에 버려진 껌으로 운동화를 만드는 재활용의 기발한 생각도 좋다. 하지만 이제는 잘 버리는 일보다 조금 씩 덜 버리는 방법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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