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 서원대 교수

 

[내일을 열며] 이광표 서원대 교수

개그맨 전유성이 오래 전 라디오 방송에서 했던 우스갯소리가 생각났다. 10년은 훨씬 더 되었고, 심야방송이었던 것 같다. 게스트로 출연한 전유성은 먼저 질문을 던지듯 말을 꺼냈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달걀을 먹기 시작 했을까요? " 전유성다웠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재밌는 질문이지만, 범상치 않은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전유성은 말을 이어갔다. "처음 누군가 달걀을 먹었겠지요. 근데 그것이 의도했던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우연이었을까요? 음, 그게 의도였든 우연이었든, 어쨌든 처음 먹는 사람은 얼마나 낯설었을까요. 무척이나 두려웠을지도 모르지요. 이것을 먹었다가 혹시 죽는 것은 아닌지, 그런 두려움이 들었겠지요."

재밌는 말이었다. 전유성스러웠다. 삼국시대 고분에서 달걀이 나온 바 있으니, 우리 조상들이 달걀을 먹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 이전이리라. 그럼 철기시대인가, 청동기시대인가? 전유성의 우스갯소리는 나를 무한상상으로 몰아넣었다. 지금이야 달걀 먹는 것이 너무나 흔하고 당연한 일이지만, 처음 달걀을 먹었던 혹은 먹어야 했던 인류의 조상 누군가에게 그건 어쩌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사소한 일이 아니었다. 인류가 처음 달걀을 먹던 날, 그 때의 상황을 두고 개그를 꾸며도 무척이나 재미있을 것 같았다. 단순 재미를 넘어 역사를 성찰하고 돌아보게 하는 고품격 개그가 가능하리라 생각했었다.

최근 우연히 흥미로운 전시를 보았다. 서울대병원 의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주사기의 탄생'이라는 작은 전시였다. 전시 제목을 접하는 순간, 아 하고 감탄이 터져 나왔다. 전유성의 달걀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만해도 무섭고 따끔한 주사기. 주사를 맞을 때 얼굴을 돌리고 눈을 질끔 감아야 하는 건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다시 생각해보니 그 주사기가 얼마나 고맙고 유용한 존재였던가. 주사기는 약을 먹거나 피부에 바르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물론 아프다는 단점이 있고, 소독을 잘못 했을 경우 감염의 우려도 있지만, 주사기의 발명은 의학의 혁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주사기를 처음 발명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주사기가 의료에 도입된 것은 언제였을까. 전시장에 들어서며 그런 궁금증이 몰려왔고 전시를 보고나니 궁금증이 풀렸다. 프랑시스 린드라는 아일랜드 의사가 1844년 처음으로 주사기를 발명했다고 한다. 그는 속이 빈 바늘을 발명했고 그 바늘을 이용해 신경통 진정 약물을 환자의 피부 밑으로 주입했다. 여기서 핵심은 속이 비어있는 바늘이다. 참 별 것 아닌데, 그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달걀을 먹는 일, 주사를 놓고 주사를 맞는 일. 지금은 사소하고 당연하지만 그것이 가져온 결과는 참으로 위대했다. 그 위대함은 결국 사소한 호기심과 상상력의 결과였다. 전유성스러움이라 해도 그리 잘못된 말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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