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흥겹다. 흥얼거림이 아랫목의 엿가락처럼 늘어져도 얼굴에는 꽃이 피어났다. 남이 차려주는 밥이 제일 맛있는 법, 두 시간 가까이 기다려도 지루해 하지 않는다. 주인장의 타는 속은 아랑곳없이 한산한 덕분에 전망 좋은 테라스를 차지하고 앉았다. 한눈에 보이는 마을 풍경은 어느새 백수를 바라보는 그들 얼굴의 주름이고 검버섯이다. 얼핏 보니 뒷머리에서 다시 검은 머리가 나는 순분할머니처럼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옛 상점들과 어우러져 나름의 조화를 이룬다.

눈길이 머문 정원에는 소나무 몇 그루와 단풍나무, 향나무가 방금 이발한 소년들처럼 엉거주춤하게 서 있다. 가장자리에는 낮은 울타리를 따라 꽃들이 피었다. 코스모스, 국화, 백일홍이 미모를 뽐내느라 오일장 가판대에 올라앉은 양말 꾸러미 마냥 화려하다. 두 세 명이 앉을만한 넙대대한 돌 옆에 보랏빛 작은 꽃망울이 수줍다. 철지난 제비꽃이다. 세 송이 할미꽃이 철없음을 희롱하더니 그마저 부럽다 한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기억이 흐릿해 질 즈음에야 느껴보는 안타까움이란다. 자식들과 세상구경이나 좀 더 하고 맛나다는 음식점을 찾아 다녀 보았더라면 어떠했을까. 당신들이 이 세상으로 데려 온 그들이 당신들보다 앞서서 고개를 넘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고 싶었단다. 세상으로 나가 잘 살아내기를 바랬는데 넘어지고 상처 입은 채로 울먹이며 대문을 들어설 때는 선뜻 안아주지 못했단다. 오히려 차갑게 밀어냈단다. 모진말로 훈계하여 돌려보내고 더 섧게 울었다고 한다. 그래야만 되는 줄 알았단다. 어찌된 일인지 그 울음에서도 가락이 느껴진다. 깊은 밤 다듬이질 소리 같기도 하다. 돌아 갈 수 없으니 과거의 시간이고 그저 그 시간을 그릴 뿐이다. 그때쯤에 상이 차려졌다고 주인장이 부른다.

가마솥에 푹 삶아 진 닭 두 마리가 요염하게 앉아 있다. ‘이 많은걸 누가 다 먹는담.’ 걱정이 앞선다. 주인장이 나서서 앞 접시에 덜어 준다. 내가 일어서서 뼈를 발라내어 야들야들한 살점들만 숟가락에 올려 드린다. 다행히 맛나게 드신다. 기다리며 풀어 놓던 고생보따리와 먼저 보낸 자식들을 얌전히 다독여 보자기에 야무지게 쌓아 한 켠에 미루었다. 몇 차례 앞 접시에 덜어 드리고 죽까지 쑤어냈다. 마지막까지 숟가락을 놓지 않는다. 다음에도 이리로 나들이 오자며 그때도 사달라며 농弄하신다. 열심히 일하고 돈 많이 벌어 고향을 찾을 적마다 모시겠다고 손가락 걸어 약속을 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유배지의 죄인처럼 마당을 벗어나지 못하니 울 밖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아랫집에 사는 할미꽃들이 올라 와 지신을 밟아 주어야 겨우 사람 구경을 할 터, 기껏해야 잡초를 뽑는 일로 소일을 하신다. 지병으로 약을 타러 병원을 가는 날은 요양보호사를 따라 나들이라도 된 양 즐거우셨단다. 오늘같이 교회에 가는 날은 제대로 콧바람을 쏘이고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단다. 그것을 마다하고 나를 따라 나선 할미꽃의 화려한 외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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