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대학교 교수 황태규(전 대통령비서실 균형발전비서관)

 

[기고] 황태규 우석대 교수·전 대통령비서실 균형발전비서관

강대국의 비밀을 다룬 '제국의 흥망'의 저자인 예일대 석좌교수 폴 케네디는 "한국의 역사는 세계사의 기적"이라고 했다. 그는 "지정학적인 조건으로 보았을 때 한국은 강대국의 제후국으로 남거나 벌써 지도상에서 없어져야 할 나라인데 중국과 일본, 러시아 사이에서 고유한 문화, 고유한 언어, 고유한 문자를 지키며 5000년 동안 이렇게 성장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라고 했다.

생태계에서 살아남은 종들은 분명한 정체성과 역할이 있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정체성과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지정학적 특징에서 아시아는 오랫동안 세계사의 중심이었고, 아시아 대륙의 문명과 태평양 해양문화의 결합이 바로 한반도에서 일어났을 것이라는 추측할 수 있다. 이를 대표하는 국가는 '고려'이다. 동판인쇄를 처음 시작한 것은 중국이지만 제대로 된 잉크를 만들지 못했다. 반면, 고려는 유성 잉크와 가장 질 좋은 종이인 고려지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양보다 200년이나 앞서 금속활자출판을 할 수 있었다. 중국에서 발명된 화약을 가지고 세계 최초로 함포를 만든 것도 고려이다. 이렇듯 한반도는 대륙으로부터 도입된 문화를 해양문화와 결합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현대에는 역동적인 융합 문명과 기술 허브의 기능이 스포츠 분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1988년 하계올림픽, 2002년 월드컵,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18년 동계올림픽 등 세계 4대 스포츠대회를 유치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위상을 떨쳤다. 해외문화의 유입 통로를 스포츠로 보았을 때 한국은 유입전략에 성공을 거둔 한편, 중요한 스포츠 역사를 새로 만들고 있다. 그것은 바로 세계무예 올림픽이라고 부르는 '세계무예마스터십 대회'이다.

한국이 굵직한 세계대회 유치를 준비하고 있을 때, 충북의 한 지자체는 야무진 꿈을 키우고 있었다. 전통무예인 '택견'을 연구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세계무예의 장을 준비한 것이다. 이어서 세계무술축제를 개최했고, '전통무예진흥법'을 발의했다. 그로부터 18년 후, 충북 청주에서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세계무예마스터십 대회'(WMC)라는 국제대회를 선보였다. 그리고 2019년 8월 세계무예 대회의 발상지인 충주에서 IOC 부위원장 등 세계스포츠계의 거목들은 물론 세계적인 무예 스타들이 총출동해 2회 세계무예마스터십 대회를 성공리에 치렀다. 전 세계 어디에도 없었던 세계무예 허브가 바로 한국 땅에서 태어난 것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창설한 근대올림픽 창시자 '쿠베르탱'의 역사에 견주어보아도 뒤질 것이 없는 한국 스포츠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세계대회는 유치한 것이지만 이 대회는 우리가 발굴했고, 우리가 중심이 되어 관련 국가들과 함께 만든 것이다. 한민족의 개방과 융합의 힘이 이 대회를 통해 다시 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년 동안 세계무예 허브를 만들겠다는 충청인들의 용감한 도전과 성공은 바로 한국인들의 기질인 '은근과 끈기'를 21세기에 보여준 중요한 사례이기도 하다. 더불어 WMC의 역사야말로 국가마케팅의 가장 소중한 기억이자 핵심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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