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신조어

이른 아침 시내를 통과해 목적지를 가고 있었다. 그런데 앳돼 보이는 청년 한 명이 시장통 거리에 산처럼 쌓인 쓰레기를 혼자 열심히 치우고 있었다. 흔히 환경미화원이라 하면 중·장년의 남자만을 연상하기에 그날 본 젊은이의 모습은 오래도록 안쓰럽게 마음 안에 자리했다. 마침 내 아이들과 함께 그 모습을 보게 됐는데 그 애들은 그 직업에 대해 과연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지난 3월, 청주시는 3명의 환경미화원을 공개모집하는 공고를 냈다.3명 채용에 108명이 응시, 36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단다.
더구나 고졸 이상의 학력자가 51명, 전문대졸 이상이 51명으로 94%를 차지했고 전원이 20~30대의 나이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결과는 고학력 실업과 청년실업난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내 아이들도 모두 20대이다. 아직은 대학공부를 마치지 않아 미리 염려할 일은 아니려니 스스로 위안도 한다. 하지만, imf이후 하락하는 경제와 그에 따르는 일자리의 부족이 15년째 이어지다 보니 당연히 그 애들에게도 취업은 낙타가 바늘을 뚫고 들어서야만 하는 문일 것이다.
서울에 소재하는 대학교에서 학점 4.0대를 취득하고, 국외 어학연수를 1년, 토익이 900점대, 각종 관련 자격증을 두루 갖춘 재원의 이야기다.

그는 자신의 취업 스펙이 남들보다 월등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15여 개 기업에 지원했지만 서류전형 통과는 4곳, 그나마 면접은 단 한 번 밖에 볼 기회를 주지 않았단다. 그로 인해 자신감도 사라지고 앞길이 막막하다 보니 웃음도 사라지고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이런 것이 현실이니 부모인 나로서는 아이들의 앞날을 염려 않을 수가 없는 실정이다.

청년실업난에 관련한 슬픈 신조어가 있다. 인턴에서 인턴으로 자리를 옮기는 '메뚜기 인턴'복사와 잔심부름만 하다가는 '행인'청년 백수 전성시대의 줄임말 '청백전'31세까지 취직을 못 하면 취업 길이 막힌다는 '삼일절'. 이밖에도 필터링이니, 꽃가루 혹은 프리라이더 등의 말도 새롭게 등장한 시대이다 보니 새롭다는 말의 의미가 '서글프다'라는 의미로 들리는 것이 현실이다.

매년 오르는 등록금 등으로 뒷바라지가 힘들다는 것은 요즘 학부모들 누구나가 겪는 어려움이다. 차라리 고등학교를 마친 후 적성을 찾아 기술을 습득하거나 자영업에 뛰어드는 자식이 효자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흔히 '우리나라는 교육열이 높다'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학부모의 이기적 교육열에 이끌려 교육이 시장논리에 지배받아 온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볼 일이다. 학업의 내용보다는 학교라는 간판을 선호해야 하고 간판을 얻으려고 사교육에 치중하다 보니 부모는 허리가 휘청거린다.

그러나 휘청거렸던 허리를 채 펼 사이도 없이 실업자로 전락하는 자식을 봐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막막할 것인가.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흔하게 말하지만 내 자식이 만약 환경미화원이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면 나는 흔쾌히 박수를 보낼 수 있을까?

▲ 한옥자
청주 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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