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충청시평] 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가을이 깊어간다. 들녘 가득 알토란같이 영근 결실은 바라보는 것만도 풍요롭다. 들깨를 떠는 농부들의 도리깨질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가을걷이와 함께 해마다 10월이면 전국적으로 축제가 만발이다. 지역별로 조금씩 성격은 달리해도 한 해의 결실을 자축하는 의미가 클 게다.

진천군에서는 올해로 40회를 맞는 ‘생거진천문화축제’를 전면 취소했다.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준비해 온 정성은 차치하고라도 상당부분 출혈을 감수하고 결단을 내렸다. 경기도 일원에서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내 지역에 발생되지 않았다하더라도 지금 양돈농가는 초비상이 되어 느긋하게 밤잠 한 번을 못자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시점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손실이 좀 있다고 축제를 감행하는 지역이 있어 마음 한편 씁쓸하다.

진천군에서는 축제를 취소하면서 ‘생거진천 문화축제 40년 기념 기록사진전’을 군립도서관 테마갤러리에서 연다. 한 자리에서 40년 축제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됐다. 1979년 10월 26일, 제1회 ‘상산축전’은 첫날부터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1896년 지금의 진천군이 명명된 이후 처음으로 야심차게 준비한 축전, 멋지게 축포를 터트리려던 바로 그날 느닷없이 서울 궁정동 안가에서 총성이 울렸다. 국상이다. 부하의 총탄에 의해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이 발생한 거다. 총을 메고 잡은 군부 정권은 18년이란 장기집권을 총성으로 마감했다. 돌고 도는 것이 역사라 하지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다 벌려 놓은 잔칫상을 접고 부랴부랴 대통령 국상을 치렀다. 축전은 한 달 뒤로 연기되어 11월 24일 열렸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역사는 흐르고 있다. 역사가 그렇듯이 진천의 축제 또한 정책의 방향에 따라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뀌었다. 강산도 변했다. 세월 따라 변하는 건, 강산만이 아니다. 삼국시대 전쟁의 각축장이었던 진천은 고구려가 차지할 땐 금물노군, 수지군, 신지군으로 불렸다가 신라의 영토가 되어선 흑양군으로, 고려 때에 강주로, 다시 진주로 바뀌었다. 조선조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6년 비로소 충청북도 진천군으로 개편되어 지금에 이른다.

처음 계획한 제1회 축제는 ‘상산축전’이라 이름 하였다. ‘상산’은 진천의 별호로 19회까지 열렸다. 1999년 제21회부터 29회까지는 ‘생거진천화랑제’로 명칭이 바뀌었다. 세계태권도공원 유치를 위해 전국적으로 지명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고, 그 기간 중 잠시 ‘세계태권도 화랑문화축제’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2008년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바뀌면서 30회부터는 ‘생거진천 문화축제’란 이름으로 군민대통합의 장을 열어가고 있다. 우리 지역 특산물인 쌀축제와 함께 상달에 벌이는 한바탕 놀이마당이다. 올해로 축제 40주년, 불혹의 나이답게 애타는 축산농가와 고뇌를 함께 하며 자숙하는 것도 군민이 통합해 나가는 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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