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세종시 대통령기록관에서는 10명의 국내외 작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세종대왕과 음악 - 치화평>(2019. 10. 05-10.31) 전시가 진행 중이다. ‘지극한 화평에 이른다’는 의미의 치화평(致和平)은 세종대왕이 「용비어천가」 125장 전장 내용의 한글 가사에 곡을 붙인 것이다.

전시장 입구 벽면에 전시된 김홍식 작가의 <세종의궤도병-해동육룡이나르샤>(스테인리스스틸 위에 돋을새김, 잉크, 페인팅, 실크스크린 등, 176×110cm, 6점)는 여섯 액자 작품 시리즈로 되어 있다. 조선시대 왕실이나 국가의 큰 행사에 대해 후세에 참고가 되도록 일체 관련 내용을 그림과 글로 기록한 병풍을 의미하는 ‘의궤도병’을 작품제목에 넣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세종대왕의 치적과 치화평과 관계되는 요소들을 뽑아 여섯 화면으로 구현한 뒤 의궤도병을 창조적으로 변용한 여섯 폭 ‘액자 병풍’에 실었다.

여섯 폭 중 양쪽 끝 액자에는 텍스트 이미지들이 새겨져 있고, 가운데 4폭에는 궁중 행사나 제례의식 장면들이 채워져 있다. 맨 왼쪽 액자에 채워진 텍스트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첫 페이지들이다. 훈민정음은 세종의 치화평 염원이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으로 구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훈민정음의 원리를 밝힌 해례본 페이지들에서 한글 자모에 금빛을 덧입혀 세월이 지나면서 전 인류가 보존해야할 위대한 유산으로 자리매김하는 한글의 가치를 부각시킨다.

치화평 악보들로 채워진 맨 오른쪽 작품은 세종이 물려준 소중한 음악적 유산을 시각화된 금속 몸에 새겨 간직한다. 가운데 네 폭의 액자에는 조선시대 근정전이나 종묘 등에서 궁중행사를 할 때 음악과 춤사위로 치화평을 공연하는 모습을 그려놓은 도병 그림들과 궁중 악무를 오늘날 재연한 공연 장면들을 채워 넣어 금속 판위에 새기고 있다. 마치 제각각의 오브제들로 조화로운 정물화를 그리듯 작가는 세종과 치화평으로 수렴될 수 있는 서로 다른 시공간의 거리감과 시점, 그림과 실사의 서로 다른 매체를 이음새 없는 모자이크처럼 한 화면에 배치한다. 종묘 앞에 지금은 소실된 옛 숭례문이 놓이기도 하고 후경에 있는 근정전이 전경에 배치된 광화문보다 훨씬 크게 드러나기도 한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우리 옛 그림의 시점과 감상자의 눈높이에서 수평으로 응시하는 사진의 시점, 산책자의 이동에 따라 변화하듯 제각각 자유로운 시점이 한 화면에 함께 자리한다. 6폭 액자 병풍은 역사적 기억과 흔적에 금속판 돋을새김의 몸을 입히고, 그 위에 잉크, 실크스크린, 페인팅 등을 얹어 작품에 놓인 서로 다른 시공간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어우러지도록 해준다. 이들 서로 다른 거리와 크기, 시점과 방향, 시간과 공간, 동작과 매체의 요소들은 ‘인용부호 없는 인용’처럼, 필름 몽타주처럼 현재적 맥락에서 새로운 스토리로 재탄생한다. 이때 역설적이게도 이들 요소요소들 사이의 이음새 없는 틈에서 스미어 나오는 장단과 강약, 동선과 선율과 같은 감각과 움직임이 세종이 창안한 치화평을 상상하게 한다.

▲ <세종의궤도병-해동육룡이나르샤> 여섯 액자 중 왼쪽 두 번째 작품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