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백목련
가을 풍경
충청일보  |  webmaster@ccdaily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10.25  11:14:12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백목련] 육정숙 수필가

강줄기를 따라 흐르는 물이 참으로 유유하다. 너울 치는 파도도 없다. 여울이 하! 잔잔하여 차라리 곱다. 아기 새의 솜털 같은 구름을 품은, 푸른 하늘이 강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고고한 자태로 하늘을 찌르듯 청벽을 타고 오르는 바위도, 온 세상을 투시하던 가을햇살마저, 강물 속에서 튀어 오른다. 가을빛은 마치 은색 비늘을 반짝이며 튀어 오르는 은어 떼 같다. 옅은 바람이 귀밑머리를 보듬고 지나간다. 알싸한 흥분이 이 가을을 사랑하게 만든다.

관광버스가 요란하게 도착을 했다. 시끌벅적하게 울긋불긋 단풍을 닮은 사람들이 한 떼로 내렸다. 앳된 모습들은 하나도 없다. 보얗게 분을 바른 얼굴엔 구불구불 시간의 흐름이 새겨졌지만 마음만은 아직도 청춘이다. 삼삼오오 앞사람을 따라 가을 길을 걸어 들어간다. 좋단다. 너무너무 좋단다.

이 가을을 닮은 사람들!

초록초록한 봄을 보내고, 뜨거웠던 열정의 여름을 보내고 나서야, 묶여있던 시간들 속에서 마법처럼 풀어 진, 시간 속으로 거슬러 오른다. 단풍이 너울 치는 이 공간으로 한발, 한발 소녀가 되어간다.

바람과 물과 햇살아래서 소녀가 되어버린 중년의 여인들! 가을빛에 유난히도 반짝이는 은발의 귀밑머리가 성스럽다. 오랜 시간, 곁을 스쳐 지나간 시간들이 결코, 결이 곱지만은 않았을 터, 그 길을 걸어 예까지 왔다. 언덕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아름아름 열매를 맺고, 키우며 아낌없이 쏟아 부은 시간들, 빛으로 살아 한껏 쏟아져 내리는 언어들이 이 가을빛에 온 세상으로 튄다. 돌아보면 거칠었던 비. 바람 속을 지나왔기에, 그 속에서의 모든 것들로 인하여 사랑을 알게 하고, 그리움을 키워왔다는 것을.

강둑에 빈 의자 하나 놓여있다. 그 곳에 무채색 고된 여정 뉘이고. 굽이치는 강물에 등짐 풀어 헹궈내고, 세상에서 묻혀 온 분진도 흘려보내고, 눈도 손도 귀도 씻어 내리고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으면 강물에서 어머니의 맥박 소리 나긋나긋 들려온다. 기억 속에도 없는 태초의 본향에서 들려오는 아늑한 소리. 그래서 누군가 고향을 물어 오면 가을빛에 물비늘 반짝이며 흘러가는 강줄기라 말하리라.

지금 나는 누구인가!

이 가을 속에서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소녀들은 고향의 뙈기밭처럼, 정지 된 시간 속에서 그리움만 키워간다. 오늘 하루도 어느새 노을빛이 감돈다. 자신도 모르게 지나가는 시간들 앞에서 전율이 인다.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오던 길! 자꾸만 돌아본다. 가을 숲을, 강물을.

온 몸의 것들을 응집시켜 이 가을을 붙잡고 싶다. 거슬러 흐를 수 없는 강물의 애태움인가! 시나브로 강물 속으로 스며드는 노을은 더욱 더 붉게 타오른다.

 

충청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비주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