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주 선문대 교수

[세상을 보며] 안용주 선문대 교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선결조건이다. 이미 한국의 부품·소재 산업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 극복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생산품과 대대적인 시설확장으로 경영악화를 걱정하는 일본기업이 울상을 짓고 있다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문제는 한일관계의 회복이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찍힌 한국이 산업적으로 脫일본하는 것은 멈출 수 없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사람과 사람이다.

일본의 경제보복이라는 프레임이 대한민국을 다시 각성하게 만들었다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실제로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한다는 선전포고를 한 시점에서 한국인의 가슴 속에는 알지 못하는 울분이 끓어 오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일본이라는 이웃 국가로부터 임진왜란이라는 전화(戰禍)를 입어 임금이 몽진을 해야 하는 지경에 빠졌었고, 1910년에는 급기야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고국산하를 떠돌다 동토에 뼈를 묻은 선조들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광복절이 되면 가슴 한 켠에서 괜스레 미안하고 아쉽고 죄송스러웠던 그 무엇들이 아베정부의 20세기 경제침략을 목도한 한국인들의 감정을 바닥부터 자극시킨 결과가 되었고,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 “부모세대들은 이런 치욕을 당하지 않겠다 약속해 달라. 미래는 우리가 책임질테니 엄마아빠는 일본 경제보복 싸움에서 이겨내시길 바란다.”는 고등학생들의 외침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8년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754만명에 달했고, 현지에서 소비한 액수만 6조원을 넘었다. 해마다 급증하던 여행수지적자는 일본의 경제침략에 분노한 반일운동으로 인해, 한·일 여행절벽을 만들어 냈고, 보이콧 제팬운동은 유니클로를 비롯한 일본제품 불매운동으로 번졌으며, 이제는 단순한 일본상품 불매가 아니라 상품에 들어간 소재에 까지 일본산을 극도로 탈피하려고 하는 21세기 국채보상운동으로 번지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까지 일본에 대한 여행절벽이 계속된다면,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0.1%하락(한국 0.05%예상)해서 한국의 2배가 될 것으로 추정했고, 지난 10년간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감안하면 성장률 하락에 대한 체감효과는 한국의 1.6%에 비해 일본이 14.3%로 9배 가까운 피해를 받을 것으로 보고했다.

한 번 금이 간 신뢰관계는 쉽게 회복될 수 없다. 산업은 脫일본을 가속화 할 것이고, 소재·부품산업은 국산화와 수입선 다변화를 통해 단일 의존도를 탈피할 것이다. 문제는 일본으로부터 가혹한 지배를 받았던 세대, 산업근대화를 짊어지고 가정보다 기업과 국가를 위해 청춘을 불살랐던 세대, 고도성장을 구가하는 사회에 태어나 일본과 일본문화에 대해 거리낌 없었던 밀레니엄 세대가 반일(反日)이라는 키워드로 세대간 통합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일본은 1989년 버블붕괴 이후 30년간의 장기 불황에서 허덕이고 있고, 아베정권은 극도의 우경화를 통해 자국민을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만들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연간 40조엔(400조원)에 가까운 화폐를 발행하여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실정이다. 헤이세이 천황은 아베의 우경화를 경계하기 위해 합리적 평화주의자인 장남에게 살아생전 천황직을 승계시켰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현재와 미래사회를 공존하기 위해서는 좌·우 어느 한 쪽으로 극단화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한·일 미래사회가 동아시아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어느때보다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것이 교류이고, 이를 지탱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이다. 우리는 지금 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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